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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는개

낙화는개

by 김민정 박사 2019.05.27

날개를 부러뜨려 / 꽃길을 만든 걸까마지막 남은 한 벌 / 지상에 내어주듯
하늘로 통하는 외길 / 눈꽃향기 뿌리다

희디흰 벚꽃처럼 / 화두를 남긴 자리
온 몸을 던지고서 / 눈물로 채운 군무
영혼을 부리는 몸짓 / 목수마저 내놓다

아리는 가슴 한 켠 / 채울 수 없을 만큼
아리랑 아라리요 / 부르는 보릿고개
당신을 놓지 않은 봄 / 켜 놓고서 춤추다
- 정유지 「낙화는개」 전문

‘낙화는개’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꽃잎으로 된 안개비란 뜻이다. 얼마 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바라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바야흐로 5월이 시작되어 계절이 늦봄과 초여름으로 향하는 시기이고 아카시아꽃들이 하얗게 산과 들을 덮고 있는 곳이 많아 창을 열자 그 향기와 함께 온 시야 가득히 꽃들이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또 벚꽃처럼 한 번에 날리지는 않았지만, 아카시아 꽃잎들도 바람에 날려 낙화가 되고 있는 모습 또한 보기 좋았다.

우리들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과 그 계절의 특징 앞에 ‘아, 벌써’라는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윤기 나는 감잎도 한창 피었고, 곧 감꽃도 피리라. 위 작품은 벚꽃을 보며 쓴 작품이라 생각되지만, 아카시아꽃에도 해당될 것 같다.

‘아리는 가슴 한 켠 / 채울 수 없을 만큼// 아리랑 아라리요 / 부르는 보릿고개// 당신을 놓지 않은 봄 / 켜 놓고서 춤추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요즘은 잘 안 쓰는 말 보릿고개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지금 들판엔 아름다운 보리물결이 이어지고 있어 이영도 시조시인님의 ‘보릿고개’라는 작품도 떠오른다.

‘사흘 안 끓여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 누름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 이영도, 「보릿고개」 전문. 요즘 아이들은 이해를 못 할 작품이다.

보릿고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은 과연 행복한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소나무껍질, 칡, 찔레순, 삘기, 아카시아꽃, 감꽃 등으로 긴긴 봄날의 허기를 채운 세대에겐 춘궁기, 보릿고개 시절의 배고픔을 절절하게 떠올리게 하는 절창의 작품이지만 요즘 세대에겐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풀뿌리와 나무껍질, 봄나물 등으로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하거나 그조차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서 태산보다 넘기 힘들다던 보릿고개였다.

그렇게 힘들게 넘던 보릿고개와 꽁보리밥. 요즘은 보리밥에 풋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 밥이 맛집의 음식, 특별한 음식, 다이어트 음식으로 변했지만, 꽁보리밥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이 전부이던 예전 시골 학생들의 도시락이 생각나기도 한다.

점심시간에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하굣길에 보리밥으로 된 도시락에 밥을 조금 덜어내고 고추장과 열무김치를 넣고 도시락을 흔들어 비벼서 아카시아꽃이 핀 그늘에 앉아 친구들과 맛있게 먹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그리워지는 오월이다.

‘내 사랑 청보리처럼/ 풋풋하면 참 좋겠다/ 오월의 하늬 햇살/ 싱그럽게 일렁이며/ 네 안에/ 늘 푸름으로/ 살았으면 참 좋겠다’ - 김민정, 「청보리처럼」 전문. 풋풋한 청보리가 오월의 아름다운 햇살 속에서 푸르고 싱그럽게 물결치는 들판의 모습도 보고 싶다.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 눈부신 초록 들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