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없을까?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없을까?
by 정운 스님 2019.06.11
차茶 한잔에 쓰고·떫고·시고·짜고·단, 다섯 가지 맛이 다 들어 있다. 차의 성품이 인간의 삶을 닮아 있다.어느 선사는 <전다훈煎茶訓>에 ‘첫 잔은 달고, 두 번째 잔은 쓰며, 세 번째 잔은 시다.’고 하였으니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또 ‘아침에 차 맛이 좋으면 날씨가 좋다.’고 했는데, 봄철 맑은 고기압권일 때는 차 맛도 좋고, 날씨가 저기압인 데다 비 오는 날은 차 맛이 떨어진다.
또 그날의 컨디션이나 기분 상태에 따라 차 맛이 좌우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차를 마시는 나라는 흥하고, 술 마시는 나라는 망한다.’고 하였다. <삼국지>의 장비는 술 먹고 부하를 때리는 못된 버릇 때문에 결국 부하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중국 문인들 중에도 이태백(701~762)이나 백낙천(772~846) 등 술을 즐겨 마셨던 이들이 많았던 만큼 중국에도 유명한 술이 많다.
이렇게 다양한 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늦은 밤에 장비를 닮아 술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중국인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중국은 다양한 차가 생산되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은 차를 물 마시듯 일상화되어 있다.
육우(727~808)는 <다경茶經>에서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것이 차이다.’라고 할 정도로 차 마시는 것 자체를 양생養生과 관련시키고 있다. 오래전부터 사찰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면서 차를 마셨고, 신도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차가 발달되었다.
차는 오감五感으로 마신다. 귀로 찻물 끓이는 소리를 듣고, 코로 차향을 맡으며, 눈으로 다구와 찻잎을 보고, 입으로 차를 맛보며, 손으로 찻잔의 감촉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 교감을 통해 차를 만나기 때문에 명상과 함께 발달되었다. 곧 순간순간의 행위 자체가 성스러워 명상하는 것과 닮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반사茶飯事’는 밥 먹고 차 마신다는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고 있으며, ‘끽다거[喫茶去, 차나 한잔 마셔라]’ 등 차와 관련된 공안[스님들이 참선할 때, 몰입하는 방편]이 많이 있다.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와 좋은 물, 차 끓이는 여러 가지 일을 ‘다도茶道’라고 하고, 차 마시는 행위와 선을 하나라고 보면서 ‘다선일미茶禪一味가 저변화되었다. 고려 때의 이규보는 ‘한 잔의 차로 곧 참선이 시작된다’고 할 정도였다.
‘잔심殘心’이라는 말이 있다. 다도에서 차를 마시고 난 뒤의 마음가짐을 의미하는데, 차를 통해 승화될 수 있는 마음의 여운이다.
어느 스님의 시구에 ‘오늘은 평생 다시 오지 않을 날임을 생각하며 혼자서 차를 마신다. 말벗으로는 오직 다관뿐이로다.’라는 감정 이입된 내용이 있다.
어떤 다도가는 “찻잔을 잡았다가 놓을 때는 그리운 사람과 이별하는 심정으로 하라.”고 하였다. 차 한잔을 통해 휴식과 여유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보다 커피를 즐겨 마신다. 스님네들도 시대 흐름에 따라 커피를 선호한다. 왠지 차의 풍미와 멋이 사라지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든다.
또 ‘아침에 차 맛이 좋으면 날씨가 좋다.’고 했는데, 봄철 맑은 고기압권일 때는 차 맛도 좋고, 날씨가 저기압인 데다 비 오는 날은 차 맛이 떨어진다.
또 그날의 컨디션이나 기분 상태에 따라 차 맛이 좌우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차를 마시는 나라는 흥하고, 술 마시는 나라는 망한다.’고 하였다. <삼국지>의 장비는 술 먹고 부하를 때리는 못된 버릇 때문에 결국 부하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중국 문인들 중에도 이태백(701~762)이나 백낙천(772~846) 등 술을 즐겨 마셨던 이들이 많았던 만큼 중국에도 유명한 술이 많다.
이렇게 다양한 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늦은 밤에 장비를 닮아 술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중국인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중국은 다양한 차가 생산되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은 차를 물 마시듯 일상화되어 있다.
육우(727~808)는 <다경茶經>에서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것이 차이다.’라고 할 정도로 차 마시는 것 자체를 양생養生과 관련시키고 있다. 오래전부터 사찰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면서 차를 마셨고, 신도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차가 발달되었다.
차는 오감五感으로 마신다. 귀로 찻물 끓이는 소리를 듣고, 코로 차향을 맡으며, 눈으로 다구와 찻잎을 보고, 입으로 차를 맛보며, 손으로 찻잔의 감촉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 교감을 통해 차를 만나기 때문에 명상과 함께 발달되었다. 곧 순간순간의 행위 자체가 성스러워 명상하는 것과 닮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반사茶飯事’는 밥 먹고 차 마신다는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고 있으며, ‘끽다거[喫茶去, 차나 한잔 마셔라]’ 등 차와 관련된 공안[스님들이 참선할 때, 몰입하는 방편]이 많이 있다.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와 좋은 물, 차 끓이는 여러 가지 일을 ‘다도茶道’라고 하고, 차 마시는 행위와 선을 하나라고 보면서 ‘다선일미茶禪一味가 저변화되었다. 고려 때의 이규보는 ‘한 잔의 차로 곧 참선이 시작된다’고 할 정도였다.
‘잔심殘心’이라는 말이 있다. 다도에서 차를 마시고 난 뒤의 마음가짐을 의미하는데, 차를 통해 승화될 수 있는 마음의 여운이다.
어느 스님의 시구에 ‘오늘은 평생 다시 오지 않을 날임을 생각하며 혼자서 차를 마신다. 말벗으로는 오직 다관뿐이로다.’라는 감정 이입된 내용이 있다.
어떤 다도가는 “찻잔을 잡았다가 놓을 때는 그리운 사람과 이별하는 심정으로 하라.”고 하였다. 차 한잔을 통해 휴식과 여유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보다 커피를 즐겨 마신다. 스님네들도 시대 흐름에 따라 커피를 선호한다. 왠지 차의 풍미와 멋이 사라지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