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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소로 보일 때

사람이 소로 보일 때

by 한희철 목사 2019.06.12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을까요, 옛날 옛적 사람이 사람을 볼 때 이따금씩 소로 보일 때가 있었답니다.분명 소로 알고 때려 잡아먹고 보면 제 아비일 때도 있고 어미일 때도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비가 쏟아져 처마 밑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는데, 웬 송아지가 따라 들어오더랍니다. 돌로 때려 잡아먹고 보니까 이게 웬일, 자기 아우였답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엉엉 울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도 괴로운 마음에 그 사람은 보따리를 싸 들고 길을 떠났습니다. 사람이 소로 보이지 않고 사람으로만 보이는 곳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넓은 세상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느라 강물에 떠내려가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고,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어 호랑이의 밥이 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는 곳을 만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겠지요,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잡히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란 바람이 부는 한 마을에 이르렀는데 그곳 사람들은 사람을 소로 보아 잡아먹는 일 없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마을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마을 어귀에서 만난 노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는 일이 없으니 희한하군요.” 그러자 그 노인은 껄껄 웃으며 “웬걸요. 우리도 옛날에는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는 일이 이따금 있었는데, 사람들이 파를 먹으면서 눈이 맑아져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소가 소로 보여서 그런 일이 없어졌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파를 몰랐습니다.

노인은 그를 데리고 파밭으로 가서 파를 보여주었고, 파 씨를 얻은 나그네는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기 집 텃밭에 파 씨를 심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만나려고 이웃의 친구들이 찾아오자 반가운 마음에 “어서들 오시게. 내가 보고 온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지.” 일어서서 맞이하려는데 친구들 눈에는 그가 소로 보였습니다.

“웬 소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군!” 하면서 도끼를 번쩍 드니 “아니야, 나는 소가 아니라 자네들의 친구일세.” 소리를 쳤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파 씨를 얻어온 그는 친구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 텃밭에서는 파 씨가 싹을 틔워 향기롭게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향기에 이끌려 파를 뜯어먹었습니다.

그런데 파를 먹은 사람들은 눈이 맑아져서 더 이상 사람을 소로 보는 일이 없어졌고, 그 후로는 아무도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소로 보이는 이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네 민담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이 소로 보여 서로를 잡아먹는 세상에 그 눈을 밝게 해 준 것은 파였습니다.

잃어버린 눈물을 되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사람으로 보게 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