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감주나무 꽃이 필 때
모감주나무 꽃이 필 때
by 권영상 작가 2019.07.18
차를 몰아 가끔 가는 옛골 칼국수 집을 향한다. 저녁 칼국수를 먹고 싶었다. 라디오를 트니 비가 내린다는 뉴스다. 영동지방은 200밀리, 서울 경기 지역은 60밀리 정도. 장마 예보는 이미 6월 말부터 있어왔지만 그간 비는 오지 않았다.작은 텃밭이 속까지 말랐다. 강낭콩 꼬투리 속이 가득 찰 때인데 만지는 것마다 훌쭉하다. 토마토 12포기도 사람이 주는 물 덕분에 간신히 크고 간신히 익어간다. 예전같이 적당한 때에 적당히 내려주는 비는 이제 없다.
차가 원터골에 들어서면서 거짓말처럼 비가 내린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비인가. 7월에 들어선지 오래지만 기다리던 비는 먼 남부지방에나 흩뿌려놓고 달아났다.
칼국수 집에 들어가 국수를 시켜놓고 창밖을 내다본다. 길 건너 모감주나무에 꽃이 이전보다 더 노랗다. 내가 칼국수 집을 가끔 찾는 까닭이 이것이다. 창문 가득 들어오는 모감주나무와 이맘때쯤 피는 모감주꽃 때문이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에 피어 장마가 그칠 쯤에 지는 게, 저 모감주꽃이에요.”손님이 별로 없는 이 시각, 모처럼 한가한 음식점 주인이 내 곁에 와 모감주꽃을 함께 내다보아 준다. 그분의 선한 얼굴이 노랗게 빛난다.
이 청계산 근방에서 가끔 만나는 나무가 모감주나무다. 초여름이면 모감주나무는 목마르게 비를 기다린다. 비를 만나야 그 장맛비 첫소리에 꽃의 문을 반가이 연다.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릴 줄 아는 나무다. 성품답게 그의 꽃말 또한 기다림이다.
비에 젖는 모감주 꽃이 그윽하리만치 노랗다. 노랗다 해도 노란 정도가 아니다. 황금빛이다. 그래서 그의 학명도 Golden rain tree다. 꽃이 황금빛이어서 얻은 이름인지 단비에 꽃 피우는 나무라서 얻은 이름인지….
모감주 꽃 그림자 어룽대는 창문에 아내며 딸아이 얼굴이 보인다. 이 칼국수 집에 오면 칼국수를 받아들기 전까지 우리는 모감주나무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그러던 딸아이가 불과 열흘 전 일자리를 얻어 외국으로 가버렸다. 그때 잠시 돌보아주고 오겠다며 아내도 함께 떠났다.
오늘은 혼자 와 빗속에 피고 있는 모감주 꽃을 본다.
모감주 꽃 필 때에 떠나갔으니 장마가 그칠 즈음 아내는 돌아오겠다.
“우리가 생각나면 가끔 여기 와 저 꽃 보세요.”
딸아이가 그 말을 할 때엔 그런 일 아예 없을 거다! 했는데 떠나간 지 열흘 만에 나는 홀로 여기 와 앉아있다. 가족이란 게 무엇인지 보내놓고 벌써 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주인께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나의 상념을 깨운다. 내가 혼자 온 까닭을 그분이야 모를 테지만 가족과 늘 함께 오던 내가 지금 혼자라는 것을 그분은 안다. 나는 가벼이 네, 하고 만다.
다른 나무들이 봄을 맞아 꽃을 피운다면 모감주나무는 그들과는 다른 시절을 개화기로 선택한다. 그때가 하필이면 길고 긴 가뭄의 끝이거나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다. 어쩌면 나무에게 가장 모진 시기다. 딸아이가 직장을 얻어 떠나간 시기 역시 그렇다.
딸아이가 버팔로시에 도착하던 날 거기에도 비가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7월은 어디서든 비를 피할 수 없는 시절이다. 그러니 비를 맞는 일은 자연스럽다. 우기에 비를 맞으며 보란 듯이 꽃을 피우는 모감주나무의 습성이 놀랍고도 아름답다.
하루가 저무는 저녁, 모감주 꽃을 바라보며 먹는 칼국수가 따뜻해서 좋다.
차가 원터골에 들어서면서 거짓말처럼 비가 내린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비인가. 7월에 들어선지 오래지만 기다리던 비는 먼 남부지방에나 흩뿌려놓고 달아났다.
칼국수 집에 들어가 국수를 시켜놓고 창밖을 내다본다. 길 건너 모감주나무에 꽃이 이전보다 더 노랗다. 내가 칼국수 집을 가끔 찾는 까닭이 이것이다. 창문 가득 들어오는 모감주나무와 이맘때쯤 피는 모감주꽃 때문이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에 피어 장마가 그칠 쯤에 지는 게, 저 모감주꽃이에요.”손님이 별로 없는 이 시각, 모처럼 한가한 음식점 주인이 내 곁에 와 모감주꽃을 함께 내다보아 준다. 그분의 선한 얼굴이 노랗게 빛난다.
이 청계산 근방에서 가끔 만나는 나무가 모감주나무다. 초여름이면 모감주나무는 목마르게 비를 기다린다. 비를 만나야 그 장맛비 첫소리에 꽃의 문을 반가이 연다.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릴 줄 아는 나무다. 성품답게 그의 꽃말 또한 기다림이다.
비에 젖는 모감주 꽃이 그윽하리만치 노랗다. 노랗다 해도 노란 정도가 아니다. 황금빛이다. 그래서 그의 학명도 Golden rain tree다. 꽃이 황금빛이어서 얻은 이름인지 단비에 꽃 피우는 나무라서 얻은 이름인지….
모감주 꽃 그림자 어룽대는 창문에 아내며 딸아이 얼굴이 보인다. 이 칼국수 집에 오면 칼국수를 받아들기 전까지 우리는 모감주나무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그러던 딸아이가 불과 열흘 전 일자리를 얻어 외국으로 가버렸다. 그때 잠시 돌보아주고 오겠다며 아내도 함께 떠났다.
오늘은 혼자 와 빗속에 피고 있는 모감주 꽃을 본다.
모감주 꽃 필 때에 떠나갔으니 장마가 그칠 즈음 아내는 돌아오겠다.
“우리가 생각나면 가끔 여기 와 저 꽃 보세요.”
딸아이가 그 말을 할 때엔 그런 일 아예 없을 거다! 했는데 떠나간 지 열흘 만에 나는 홀로 여기 와 앉아있다. 가족이란 게 무엇인지 보내놓고 벌써 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주인께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나의 상념을 깨운다. 내가 혼자 온 까닭을 그분이야 모를 테지만 가족과 늘 함께 오던 내가 지금 혼자라는 것을 그분은 안다. 나는 가벼이 네, 하고 만다.
다른 나무들이 봄을 맞아 꽃을 피운다면 모감주나무는 그들과는 다른 시절을 개화기로 선택한다. 그때가 하필이면 길고 긴 가뭄의 끝이거나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다. 어쩌면 나무에게 가장 모진 시기다. 딸아이가 직장을 얻어 떠나간 시기 역시 그렇다.
딸아이가 버팔로시에 도착하던 날 거기에도 비가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7월은 어디서든 비를 피할 수 없는 시절이다. 그러니 비를 맞는 일은 자연스럽다. 우기에 비를 맞으며 보란 듯이 꽃을 피우는 모감주나무의 습성이 놀랍고도 아름답다.
하루가 저무는 저녁, 모감주 꽃을 바라보며 먹는 칼국수가 따뜻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