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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름 딴 미국 단과대학

한국인 이름 딴 미국 단과대학

by 이규섭 시인 2019.10.11

미국서 날라 온 낭보다.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나쁜 뉴스로 짜증스럽고 불편한 가운데 모처럼 흐뭇한 착한뉴스다. 최근 미국 일리노이주립대(ISU)가 소속 예술대학의 이름을 재미(在美) 화가 김원숙 씨의 이름을 따 ‘김원숙 예술대학’으로 명명했다는 보도다.미국 단과대학에 한국인 이름이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인의 긍지를 갖게 한다. 한국계 미국인 남편 토머스 클레멘트 씨와 함께 예술대학에 1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우리 돈으로 143억 원의 큰돈을 선뜻 내놓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김 씨는 기부금 약정식에서 “기부는 내가 이곳에서 가졌던 기회와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내가 꿈꿨던 것 보다 더 높은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리노이주립대 총장은 “그가 졸업생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 학생들과 일리노이주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 씨는 1971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전액 장학금을 받고 ISU로 유학을 가서 미국에 정착했다. 김 씨는 1978년까지 ISU에서 학사, 예술석사(MA), 예술실기석사(MFA)를 취득했다. 남편 클레멘트 씨는 6·25 전쟁고아다. 미국으로 입양된 뒤 과학자이자 비즈니스맨으로 성공했다. 일리노이주와 이웃한 인디애나주에서 의료기기 전문회사를 운영해 돈을 벌었다.

김 씨는 회화, 소묘, 판화, 조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5년 유엔이 선정한 ‘올해의 예술가’에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에서 64회에 걸쳐 단독 전시회를 열었다. 2013년엔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열어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당시 문정인 시인은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 찬 천부의 예술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바티칸미술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그의 그림은 내 방에도 걸려 있다.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은혜가 넘친다. 김 씨의 부친이자 언론계 대선배인 김경래 장로에게 받은 귀한 선물이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냈고, 월남 파병, 사카린 밀수사건 등 굵직한 특종으로 한국 언론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관계 진출 제의를 받았으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언론인을 고수했다.

은퇴 후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본부’ 대표, 한국기독교기념재단 상임이사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올해 여든 둘이지만 건강하다. 경향사우회 송년 모임에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여 후배들을 격려하고 건재함을 보여줘 귀감이 된다. 따님의 기부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게 아닌가 여겨진다.

김원숙 화백을 만난 건 2013년 김경래 선배의 저서전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부제 기자 30년, 장로 30년) 출판기념회에서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이어령 교수는 이 책에 “과거 경향신문사에서 김 장로와 함께 기자생활을 했는데 내가 뒤늦게 예수님을 믿게 된 데에는 김 장로의 영향이 컸다”라고 밝혔다.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게 많아서 행복한 게 아니다. 나눔을 통해 더 큰 행복을 누린다. 그의 기부가 가을햇살처럼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