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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自淨)

자정(自淨)

by 운영자 2011.10.25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깨끗한 존재다. 식물도 태어나면서부터 청정한 존재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깨끗한 존재다.

모든 생명체가 스스로 맑은 자정(自淨)의 존재라면 문제는 스스로 깨끗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깨끗한 능력을 갖춘 식물을 마음대로 다루곤 한다.

집 근처 팔공산에서 흘러오는 팔거천은 여귀, 갯버들 등 많은 식물이 살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는 오리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3호선 건설과 더불어 하천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식물들이 몽땅 사라졌다. 대신 하천가에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있다.

엄청난 돈을 들여 벌이고 있는 하천 정비 사업이 과연 누굴 위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생명체를 죽이는 일종의 ‘만행’이다. 나는 일요일에 집 앞 팔거천에 간다.

내개 이곳에 자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오리와 여귀를 보는 것이다. 오리들이 자식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건강한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간혹 어미오리는 새끼들을 습지로 데려가서 놀기도 하고, 때로는 모래톱에 나와 일광욕을 즐긴다. 나는 여름에 여귀의 꽃을, 가을에 여귀의 단풍을 즐긴다. 특히 비단처럼 펼쳐진 여귀 사이로 걸어가는 오리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나 정비사업 과정에서 여귀가 모두 사라졌다. 여귀가 사라지면서 습지도 사라졌고, 습지가 사라지니 오리도 사라졌다.

오리가 사라지니 나의 즐거움도 사라졌다. 나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나니 그 자리에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하다.

지금 한국 곳곳에서 팔거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행’을 목격할 수 있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공간인 습지를 사라지게 한 후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살지 않는 하천에 깨끗한 길을 만들어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나는 팔거천의 만행을 보면서 그 동안 이 땅에 살면서 문명을 일군 인간의 지혜와 믿음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온 세상이 생태를 고민하는 시대에 어떻게 과감하게 뭇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는 습지를 하루아침에 쓸어버릴 수 있는가. 과연 그들도 인간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자연이 정직한 것은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고, 인간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거역한다면 자연의 보복을 달갑게 받아야 한다.

인류가 이 땅에서 살면서 자연을 거역하면서 받은 고통을 한번이라도 기억한다면 지금 시대에 그런 만행은 결코 다시 저지르지 않을 터지만, 여전히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반성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은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에게는 결코 보복하지 않지만, 거역하는 존재에게는 가차 없이 보복한다.

인생은 그런 원리를 깨달으면서 살아가는 존재라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터전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판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