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벗이 셋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
좋은 벗이 셋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
by 운영자 2011.11.01
‘일생을 살면서 좋은 벗이 셋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내게 진정한 벗이 셋이 아니라 하나라도 있는지... 사찰이 아닌 대인관계가 있는 학교에서 평소 친분이 없는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어떤 특별한 부탁이 있어 다가오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만큼 순수함이 사라졌다는 뜻인데, 출가자이지만 참으로 속물에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사귀는 일이 쉽지 않고, 친구로 발전되는 일이 쉽지 않다.
아마도 사람 사는 세계는 어디나 똑같을 것이다.
‘우정’이라고 하면, 『삼국지』의 유비와 관우ㆍ장비가 떠오른다. 세 사람은 ‘태어날 때는 달리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함께하자’고 하였다.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우정과 의리로 독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인물들이다.
또 우정 이상의 남자들의 의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사기』의 저술가인 사마천이다.
사마천(B.C. 145~BC 86)은 사관이었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통사를 저술할 숙명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하나 터졌다.
당시 명장이던 이릉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항복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한무제는 몹시 화를 냈고, 대신들까지도 이릉을 비난하고 나섰다.
사마천은 친구였던 이릉의 어쩔 수 없는 실수를 변호하다가 무제의 분노를 사게 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사마천에게 주어진 형벌은 50만전의 벌금을 내야했고, 그렇지 못하면 사형을 당하든지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이었다.
사마천의 친구 임안은 벌금을 준비하기 위해 집안 대대로 살아온 집을 팔아 사마천을 구하려 했으나 실패해 결국 그는 궁형을 당하게 되었다(사마천에게는 치욕스런 일이었으나 『사기』를 저술하기 위해 궁형을 선택한 것).
이후 사마천이 복직한 뒤, 반대로 친구 임안이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친구 임안이 사형에 처하게 되자,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친구를 대신해 독약을 먹겠다고 청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하더니 사마천ㆍ이릉ㆍ임안, 남자들만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친구라는 존재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위안이 될 뿐만 아니라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도 친구는 수행 길에 있어 값진 보배이다. 그래서 불교 경전에서 좋은 벗과 소중한 인연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한다.
훌륭한 벗은 그만큼 수행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잡아함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제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 수행자에게 좋은 친구가 있으면 그 사람은 수 행의 절반을 완성한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께서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렇지 않다. 좋은 도반이 있다는 것, 좋은 인연 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수행의 전부를 완성한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불교에서는 친구라는 말보다 ‘길벗’이라고 하여 도반道伴이라고 칭한다. 또한 ‘승우勝友’라는 말이 있다.
서로 탁마하고, 격려하는 친구를 말하는데, 누가 먼저라는 선배의 뜻이 아니라, 둘이 함께 나란히 걷는다는 동행同行의 의미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말에는 인간은 적극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상대방의 베풂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상대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자. 바로 이런 노력이 있을 때, 벗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대 곁에 가까이 있을 것이다.
정운스님
내게 진정한 벗이 셋이 아니라 하나라도 있는지... 사찰이 아닌 대인관계가 있는 학교에서 평소 친분이 없는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어떤 특별한 부탁이 있어 다가오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만큼 순수함이 사라졌다는 뜻인데, 출가자이지만 참으로 속물에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사귀는 일이 쉽지 않고, 친구로 발전되는 일이 쉽지 않다.
아마도 사람 사는 세계는 어디나 똑같을 것이다.
‘우정’이라고 하면, 『삼국지』의 유비와 관우ㆍ장비가 떠오른다. 세 사람은 ‘태어날 때는 달리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함께하자’고 하였다.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우정과 의리로 독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인물들이다.
또 우정 이상의 남자들의 의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사기』의 저술가인 사마천이다.
사마천(B.C. 145~BC 86)은 사관이었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통사를 저술할 숙명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하나 터졌다.
당시 명장이던 이릉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항복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한무제는 몹시 화를 냈고, 대신들까지도 이릉을 비난하고 나섰다.
사마천은 친구였던 이릉의 어쩔 수 없는 실수를 변호하다가 무제의 분노를 사게 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사마천에게 주어진 형벌은 50만전의 벌금을 내야했고, 그렇지 못하면 사형을 당하든지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이었다.
사마천의 친구 임안은 벌금을 준비하기 위해 집안 대대로 살아온 집을 팔아 사마천을 구하려 했으나 실패해 결국 그는 궁형을 당하게 되었다(사마천에게는 치욕스런 일이었으나 『사기』를 저술하기 위해 궁형을 선택한 것).
이후 사마천이 복직한 뒤, 반대로 친구 임안이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친구 임안이 사형에 처하게 되자,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친구를 대신해 독약을 먹겠다고 청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하더니 사마천ㆍ이릉ㆍ임안, 남자들만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친구라는 존재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위안이 될 뿐만 아니라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도 친구는 수행 길에 있어 값진 보배이다. 그래서 불교 경전에서 좋은 벗과 소중한 인연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한다.
훌륭한 벗은 그만큼 수행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잡아함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제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 수행자에게 좋은 친구가 있으면 그 사람은 수 행의 절반을 완성한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께서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렇지 않다. 좋은 도반이 있다는 것, 좋은 인연 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수행의 전부를 완성한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불교에서는 친구라는 말보다 ‘길벗’이라고 하여 도반道伴이라고 칭한다. 또한 ‘승우勝友’라는 말이 있다.
서로 탁마하고, 격려하는 친구를 말하는데, 누가 먼저라는 선배의 뜻이 아니라, 둘이 함께 나란히 걷는다는 동행同行의 의미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말에는 인간은 적극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상대방의 베풂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상대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자. 바로 이런 노력이 있을 때, 벗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대 곁에 가까이 있을 것이다.
정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