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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고릴라

보이지 않는 고릴라

by 운영자 2011.11.08

오늘 아침 신문에도 빠지지 않고 나온 기사가 있습니다. 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업인도 정치인도, 여당도 야당도, 학생도 선생도, 아내도 남편도, 남녀노소 모두 변해야 한다는 외침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변화에 대한 주장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손가락이 타자를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곧 “네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어리석은 일로 인하여 끊임없이 실망하면서도 스스로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패거리지어 다른 패거리의 어리석음을 손가락질 합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너희는 변해야 한다!” 고 외칩니다. 확신에 차 있습니다.

흔히 "신념" 이라고 하더군요 . 그러나 기실은 그 "신념" 이라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착각"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진정어린 변화는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변화 되어야 한다면서도 자신은 변하지 않을까요? 흔히 다른 사람 눈의 티끌은 보아도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더군요.

왜 자기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할까요? 자신의 허물은 애써 보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남의 눈 티끌은 왜 잘 보일까요? 타자의 허물은 애써 보려하기 때문입니다.

착각은 자유라더니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허물은 선의적인 것이므로 당연히 덮어두어야 하고 , 타자의 허물은 악의적인 것이므로 기필코 고쳐야한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인간의 두뇌 는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데 놀랄 정도로 능숙합니다.

그래서 대들보도 보려하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티끌도 보려들면 잘 보이는 것이죠.

이는 신념에 중대한 오류가 포함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신념의 결함을 실험하였는데 바로 대니얼 사이먼스 등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입니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심리 때문에 눈앞에 지나 간 고릴라마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지요.

한편 경제학자 카를로 치폴라는 사람을 “무력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으로 나누고 그 중에서 어리석은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행동이 낳을 결과를 전혀 예측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지능이나 성격과 관계없이 어떤 무리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랍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를 통하여 소통하는 오늘날에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을 파내는 일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완전한 사람 없기에 그 어떤 가치나 신념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혜의 시작은 보기 싫어도 보아야 할 것을 보고 ,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할 것을 듣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해대는 사람이야 말로 눈앞의 고릴라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까요?

어리석음을 면하려면 자기 눈의 대들보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어린 변화입니다. 더 이상 착각은 자유가 아닙니다.

이성록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