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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엽서

by 운영자 2011.11.10

낙엽이 새로운 계절을 만들고 있다. 나는 그리스의 테오프라토스처럼 수업시간에 낙엽을 들고 들어가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오늘은 은행나뭇잎과 마로니에잎을 보여준 후, 나무 이름을 맞추게 했다. 그러나 은행나뭇잎은 이구동성으로 곧장 맞췄지만 마로니에는 한 사람도 맞추지 못했다.

은행나뭇잎과 마로니에잎은 노란색깔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 외에 식물학적 공통점은 찾을 수 없다.

은행나뭇잎은 크기가 작지만 마로니에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중에서도 오동나무를 제외하면 제일 클지도 모른다.

내가 학생들에게 나뭇잎을 보여주는 것은 석가모니가 많은 사람들에게 연꽃을 보여준 염화시중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관찰’이 공부에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이다.

올해 내가 사는 곳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은행나뭇잎과 마로니에잎은 유난히 곱게 물든 반면 느티나무나 담쟁이덩굴 등의 나뭇잎은 물들기도 전에 시들어버렸다.

청소하는 분들에게 나뭇잎은 골칫덩어리지만,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낭만의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을의 낭만 중 하나는 낙엽에 글을 써서 친구나 애인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나뭇잎에 글을 쓰는 이른바 엽서는 종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혹은 종이가 귀한 시절에 종이대용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이제는 낙엽을 주어서 글을 쓰는 사람들마저 드물다.

물론 낙엽에 글을 쓴다고 해서 낭만적인 것도 아니지만, 낙엽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게 문제다.

내가 낙엽을 주워 학생들에게 보여주거나 때론 모든 수강생들에게 한 장의 나뭇잎을 봉투에 넣어주는 것은 낙엽이 결국 새 생명을 만든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옛날 가난한 선비들은 나뭇잎에 시를 적었지만, 감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나뭇잎을 센다.

나는 종종 학생들과 야외수업하면서 나뭇잎을 세는 자는 도를 깨우칠 것이라 호언한다.

학생들은 그 순간 모두 웃지만, 나는 한층 심각한 얼굴로 나뭇잎을 세는 사람은 취업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런 뒤 한 학생에게 직접 나뭇잎을 세어보라고 한다.

이런 나의 낯선 행동에 학생들은 자못 당황하지만, 낯설게 하는 게 나의 교육방법 중 하나이다. 가을의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라 공부의 대상이다.

땅에 떨어진 이파리를 보는 순간, 나무의 봄과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한 그루의 나무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이 입동이다. 가을의 끝자락이 겨울을 물고 있다. 아직도 낙엽은 바람 따라 뒹굴지만, 어느 나뭇잎이라도 한 장 주워서 만나지 못한 사람이나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엽서라도 한 장 써서 보내고 싶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낸 기억이 까마득하다. 한 장의 엽서를 보내기 위해 잎을 물에 씻고 말리면서 상대를 생각하면 그 순간 가슴이 행복으로 벅차다.

엽서를 쓴다는 것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느린 삶의 실천이다. 주로 휴대폰의 문자발송으로 상대와 소통하는 현대인의 생활태도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날로그식의 엽서 한 장도 인간의 삶을 얼마든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낙엽 밟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것은 친구와 애인을 위해 낙엽을 줍는 따뜻한 손길이다.

계명대 사회과 교수 강판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