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인생의 가치 결정짓는 행위

인생의 가치 결정짓는 행위

by 운영자 2011.11.22

대학생들에게 과제물로 (자신의) 인생 가치관과 가치관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써보라고 하였다. 과제물 중에 조금 놀라운 내용을 쓴 학생이 있었다.

자신은 강남의 재벌 아들로 지금부터 평생을 놀고먹어도 살 수 있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 살았던 것은 아니고 부모님의 악착같은 경제 원리로 부동산으로 돈을 벌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 학생의 첫 번째 가치관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였다. 지금도 유니세프에 기부를 하고 있으며, 꿈은 인권변호사가 되어 배고픈 민중들 입장에 서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학생이 설령 말로 끝날지라도 깨어있는 젊은이요, 젊은 사람다운 자각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칭찬해주고 싶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

아마 이 친구가 사회에서 활동할 무렵이면, 우리나라 사회도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일반화되고 보편화되리라고 기대한다.

몇 달전 글을 통해서 읽은 감동받은 한 미국인이 있다. 15년간 대학과 병원, 어린이 보호단체 등에 익명으로 6억 달러를 기부한 ‘찰스 피니’라는 사업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회사를 매각할 때 인수자가 회계장부에서 그 사실을 발견함으로서 그의 선행이 언론에 알려졌다. 그는 젊었을 때, 군복무를 전제로 정부가 주는 학자금 융자로 대학등록금을 냈었고, 심야식당에서 샌드위치를 팔아 학비를 벌며 어렵게 공부했다고 한다.

집도, 자동차도 없이 손목에 찬 시계조차 15달러짜리로 10년째 차고 있었다. 기자가 면담을 요청했지만 “내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말만큼 쉽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얼마 전 사망한 스티브 잡스는 20대 초반부터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는 결코 부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인류에 공헌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또한 사망 이후에도 그의 생전 업적에 비하면 회사 주식이외에는 축적된 재산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존경스러운 사람은 안철수씨다. 그가 가지고 있는 1500억원의 회사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그의 뜻은 저소득층의 학생들이 미래를 꿈꾸도록 하는 것이 그의 기부 목적이다. 정치적인 방편이라는 언론 기사도 있지만 여기까지는 염두하고 싶지 않다. 단순히 이번 기부만으로 안철수씨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20여년 전부터 컴퓨터 바이스 감염을 막는 백신을 발견하고, 무료로 보급시킨 사람이다. 그는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보람된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그렇게 실천했다는 점이다. 대중을 위해 헌신코자 했던 그의 애틋한 마음을 높이 사고 싶다.

스님이지만 세속 사람들의 기부문화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세속에 살고 있는 이들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불교에서는 대승의 삶이라고 한다.

즉 진정한 보살(=참된 수행자)의 행을 지향하는 것이 대승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기부하는 행위를 보시布施라고 하는데, 보시는 불교신자나 스님들의 첫 번째 수행 덕목이기 때문에 기부자들의 행실에 눈여겨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참 삶의 길인가를 곰곰이 사유해본다. 늘 자신을 중심점에 두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베풂의 여유가 없고, 자신 위주로 세상 돌아가기를 바라다보니 각박하고 스트레스 연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달력이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12월이다. 춥고 배고픈 서민들에게 추운 겨울,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내밀어 보자. 미국인 철학자 스코트 니어링의 명언이다.

“소유하는 것들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정운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