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는 골목가게들
문을 닫는 골목가게들
by 운영자 2011.12.15
출근길에 본 골목 굴국밥집이 수상쩍다. 음식점 안 의자들이 어쩌라고 차곡차곡 그대로 쌓여있다. 엊저녁 퇴근할 때에 본 모습 그대로다. 퇴근이라 해 봐야 오후 6시 무렵이다.
그 무렵이면 탁자와 의자를 가지런히 놓고 손님을 받을 시간이다. 근데 어제 쌓아둔 의자가 그대로 있다. 의자의 쇠붙이들이 아침 미명에 부딪혀 이쪽을 내다본다.
“또 문을 닫는 모양이구나!”나도 모르게 혼잣소리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 앞 골목 가게들은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빌딩이 하나 둘 서건, 가게가 하나 둘 들어서건 나는 그런 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질 만큼 나도 한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데 요 한 달 사이에 골목 가게들이 눈에 띄게 문을 닫는다. 드는 집은 몰라도 나는 집은 안다고 제일 먼저 문 닫은 가게는 김밥집이었다.
김밥만 파는 게 아니라 2,3천원하는 가벼운 음식들도 함께 팔았다. 밤중에 배가 출출하면 괜히 걸어나와 이것저것 먹고 돌아가던 집이다. 음식 가격이 약한 김밥집이 제일 먼저 불경기의 타격을 입었다.
그러더니 그 곁의 북카페가 문을 닫았다. 종업원 두 명과 쉰 중반의 남자 주인. 그들은 늘 팔짱을 끼고 바깥을 내다보거나 길에 세워둔 차를 닦는 게 그들 일의 전부였다.
“불경기가 그렇게 천천히 가게를 말려죽이는 거에요.”
그때 내가 찾아간 미용실 주인이 좀은 독하게 들리는 말을 했다.
“그 정도면 본전은 이미 틀렸고 빚만 느는 거죠.”
실은 그 미용실도 삐걱거리는 중이다. 조그마한 이 거리에 미용실이 네 곳이다. 가게 세를 못 내는 이유로 건물 주인한테 1차 경고를 먹었다. 계속 안 내면 더 강력한 미용실을 지금의 미용실 옆방에 낸다고 주인이 윽박지른단다.
김밥집 맞은 편엔 맥주집이 있다. 양주도 팔고, 소주도 파는 복합개념 술집이다. 재작년만해도 사철 구분없이 해만 지면 불야성이었다. 열 평쯤 되는 실내는 물론이고 테라스까지 술꾼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손님들이 말랐다. 이런 저런 일로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안 됐어서 늘 그 안을 들여다본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그런 상태인데도 문을 못 닫는 건 아무래도 몇 년 전의 그 영화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인 듯 했다. 그러더니 얼마를 더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근데 오늘이다. 그 맥주집 옆 건물에 굴국밥집이 있는데 그 집 모양이 나를 안타깝게 했다. 그 집만 문을 닫는다면 모른 척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마주보고 있는 네 가게가 모두 문을 닫아간다는다는 게 나를 힘 빠지게 했다. 북카페는 들러볼 계제가 안 됐지만 다른 세 가게는 가끔 찾아갔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집들을 한 번씩이라도 들러봐 준 게 있어서 그래도 덜 미안하다.
며칠 전이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빚 좀 해결해 달라고 문의한 사람이 11만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 중에는 소득 100만원 이하가 53퍼센트. 경비원 아저씨들이나 손님없는 식당주인들이 대부분이라 했다. 그 일이 남의 일이긴 하지만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다. 빚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 견뎌내는 그들의 삶이 내 가슴을 누른다.
골목 가게에 화기가 돌아야 어떻든 사람 사는 맛이 난다. 그래야 입에서 나오는 말씨도 윤택해지고 서로 관대해진다. 돈 좀 번다고 골프채에 고급승용차를 몰고 거들먹거리는 꼴이 보기 싫기는 해도 그러는 동네 가게 주인들이 다시 그립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권영상 <작가>
그 무렵이면 탁자와 의자를 가지런히 놓고 손님을 받을 시간이다. 근데 어제 쌓아둔 의자가 그대로 있다. 의자의 쇠붙이들이 아침 미명에 부딪혀 이쪽을 내다본다.
“또 문을 닫는 모양이구나!”나도 모르게 혼잣소리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 앞 골목 가게들은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빌딩이 하나 둘 서건, 가게가 하나 둘 들어서건 나는 그런 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질 만큼 나도 한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데 요 한 달 사이에 골목 가게들이 눈에 띄게 문을 닫는다. 드는 집은 몰라도 나는 집은 안다고 제일 먼저 문 닫은 가게는 김밥집이었다.
김밥만 파는 게 아니라 2,3천원하는 가벼운 음식들도 함께 팔았다. 밤중에 배가 출출하면 괜히 걸어나와 이것저것 먹고 돌아가던 집이다. 음식 가격이 약한 김밥집이 제일 먼저 불경기의 타격을 입었다.
그러더니 그 곁의 북카페가 문을 닫았다. 종업원 두 명과 쉰 중반의 남자 주인. 그들은 늘 팔짱을 끼고 바깥을 내다보거나 길에 세워둔 차를 닦는 게 그들 일의 전부였다.
“불경기가 그렇게 천천히 가게를 말려죽이는 거에요.”
그때 내가 찾아간 미용실 주인이 좀은 독하게 들리는 말을 했다.
“그 정도면 본전은 이미 틀렸고 빚만 느는 거죠.”
실은 그 미용실도 삐걱거리는 중이다. 조그마한 이 거리에 미용실이 네 곳이다. 가게 세를 못 내는 이유로 건물 주인한테 1차 경고를 먹었다. 계속 안 내면 더 강력한 미용실을 지금의 미용실 옆방에 낸다고 주인이 윽박지른단다.
김밥집 맞은 편엔 맥주집이 있다. 양주도 팔고, 소주도 파는 복합개념 술집이다. 재작년만해도 사철 구분없이 해만 지면 불야성이었다. 열 평쯤 되는 실내는 물론이고 테라스까지 술꾼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손님들이 말랐다. 이런 저런 일로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안 됐어서 늘 그 안을 들여다본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그런 상태인데도 문을 못 닫는 건 아무래도 몇 년 전의 그 영화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인 듯 했다. 그러더니 얼마를 더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근데 오늘이다. 그 맥주집 옆 건물에 굴국밥집이 있는데 그 집 모양이 나를 안타깝게 했다. 그 집만 문을 닫는다면 모른 척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마주보고 있는 네 가게가 모두 문을 닫아간다는다는 게 나를 힘 빠지게 했다. 북카페는 들러볼 계제가 안 됐지만 다른 세 가게는 가끔 찾아갔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집들을 한 번씩이라도 들러봐 준 게 있어서 그래도 덜 미안하다.
며칠 전이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빚 좀 해결해 달라고 문의한 사람이 11만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 중에는 소득 100만원 이하가 53퍼센트. 경비원 아저씨들이나 손님없는 식당주인들이 대부분이라 했다. 그 일이 남의 일이긴 하지만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다. 빚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 견뎌내는 그들의 삶이 내 가슴을 누른다.
골목 가게에 화기가 돌아야 어떻든 사람 사는 맛이 난다. 그래야 입에서 나오는 말씨도 윤택해지고 서로 관대해진다. 돈 좀 번다고 골프채에 고급승용차를 몰고 거들먹거리는 꼴이 보기 싫기는 해도 그러는 동네 가게 주인들이 다시 그립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권영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