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시에 담긴 삶의 성찰
신춘 시에 담긴 삶의 성찰
by 운영자 2012.01.06
정제되지 않은 정보의 유희가 판치고, 순간 임팩트에 강한 짧은 문자가 사고(思考)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시대에 문학의 가치와 영향력도 빛이 바랜다.
밥이 되지 못하는 시를 쓰는 시인의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시는 피폐해진 영혼을 위무하는 카나리아가 되지 못한다. 시가 우리시대의 노래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새해 첫날 신문을 장식하는 신춘문예 당선시를 읽는 즐거움은 신선하고 짜릿하다.
얼음 속을 뚫고 피어나는 복수초같은 생명력을 느낀다. 신춘문예는 한국만의 독특한 등단제도로 문인이 되는 길을 제약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등용문임에는 틀림없다.
문학은 시대의 반영이자 삶의 투영이다.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십시오./안내방송이 끝나기 전 먼저 도착한 바람에 몸이 흔들린다’는 ‘그늘들의 초상’(최호빈, 경향신문)은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그렸다.
‘다리가 네 개여서 쉽게 흔들리는’ ‘식탁에서’(안미옥, 동아일보)는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혼돈의 세태를 꼬집는다. ‘조련으로 청춘을 보낸 K는 결국 야생을 놓치고 말았다’는 ‘조련사 K'(한명원, 조선일보)는 우리에 갇힌 동물원 맹수처럼 변해가는 남루한 삶의 성찰이자 ‘야생성’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매일 아프면 그것도 아픈 게 아니라고/위독한 시간들을 한 곳에 풀어 놓으면서/아버지가 고요의 바다 어디쯤을 채굴하고 있었다’는 ‘월면 채굴기’(류성훈, 한국일보)는 뇌종양 수술을 받는 부친의 모습을 달 표면의 채굴에 비유하며 아버지의 병과 생애 이야기를 입체적 상상력으로 들려준다.
‘저무는, 집은 저무는 것들을 가두고 있어서 저무네 저물도록, 노래를 기다리던 후렴이 노래를 후려치고 저무는, 집에는 아직 당도한 문장과 이미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있네 다, 저무네’ 언어의 지평을 펼친 ‘저무는, 집’(여성민, 서울신문)은 반복되는 문장의 공간에 저무는 풍경들을 아련하게 풀어 놓았다.
서민의 가정 풍경을 자수(刺繡)처럼 한 땀 한 땀 수놓은 ‘역을 놓치다’(이해원, 세계일보)는 삶의 깊이가 묻어난다. ‘실꾸리처럼 풀려버린 퇴근길/오늘도 졸다가 역을 놓친 아빠는/목동역에서 얼마나 멀리 지나가며/헐거운 하루를 꾸벅꾸벅 박음질하고 있을까’ 일상의 언어로 직조한 따듯한 언어가 평화롭고 푸근하다.
‘핸드폰을 걸고 문자를 보내도 어느 난청지역을 통과 하는지 연락이 안 된다.’ 텔레비전은 뉴스로 하루를 마감한 시간, ‘졸다가 김포공항까지 갔다 왔다’는 ‘늘어진 아빠의 목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힘이 없다’며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녹여냈다.
이해원씨는 50대에 접어들어 시작(詩作)을 했고, 64세 늦깎이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늦게 시작한 분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젊은 문학도의 길을 가로막은 건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는 당선 소감에도 따스함이 묻어난다.
문학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며 도전정신으로 일궈 낸 아름다운 열매가 더 값지다. 60부터 청춘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규섭<시인>
밥이 되지 못하는 시를 쓰는 시인의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시는 피폐해진 영혼을 위무하는 카나리아가 되지 못한다. 시가 우리시대의 노래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새해 첫날 신문을 장식하는 신춘문예 당선시를 읽는 즐거움은 신선하고 짜릿하다.
얼음 속을 뚫고 피어나는 복수초같은 생명력을 느낀다. 신춘문예는 한국만의 독특한 등단제도로 문인이 되는 길을 제약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등용문임에는 틀림없다.
문학은 시대의 반영이자 삶의 투영이다.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십시오./안내방송이 끝나기 전 먼저 도착한 바람에 몸이 흔들린다’는 ‘그늘들의 초상’(최호빈, 경향신문)은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그렸다.
‘다리가 네 개여서 쉽게 흔들리는’ ‘식탁에서’(안미옥, 동아일보)는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혼돈의 세태를 꼬집는다. ‘조련으로 청춘을 보낸 K는 결국 야생을 놓치고 말았다’는 ‘조련사 K'(한명원, 조선일보)는 우리에 갇힌 동물원 맹수처럼 변해가는 남루한 삶의 성찰이자 ‘야생성’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매일 아프면 그것도 아픈 게 아니라고/위독한 시간들을 한 곳에 풀어 놓으면서/아버지가 고요의 바다 어디쯤을 채굴하고 있었다’는 ‘월면 채굴기’(류성훈, 한국일보)는 뇌종양 수술을 받는 부친의 모습을 달 표면의 채굴에 비유하며 아버지의 병과 생애 이야기를 입체적 상상력으로 들려준다.
‘저무는, 집은 저무는 것들을 가두고 있어서 저무네 저물도록, 노래를 기다리던 후렴이 노래를 후려치고 저무는, 집에는 아직 당도한 문장과 이미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있네 다, 저무네’ 언어의 지평을 펼친 ‘저무는, 집’(여성민, 서울신문)은 반복되는 문장의 공간에 저무는 풍경들을 아련하게 풀어 놓았다.
서민의 가정 풍경을 자수(刺繡)처럼 한 땀 한 땀 수놓은 ‘역을 놓치다’(이해원, 세계일보)는 삶의 깊이가 묻어난다. ‘실꾸리처럼 풀려버린 퇴근길/오늘도 졸다가 역을 놓친 아빠는/목동역에서 얼마나 멀리 지나가며/헐거운 하루를 꾸벅꾸벅 박음질하고 있을까’ 일상의 언어로 직조한 따듯한 언어가 평화롭고 푸근하다.
‘핸드폰을 걸고 문자를 보내도 어느 난청지역을 통과 하는지 연락이 안 된다.’ 텔레비전은 뉴스로 하루를 마감한 시간, ‘졸다가 김포공항까지 갔다 왔다’는 ‘늘어진 아빠의 목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힘이 없다’며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녹여냈다.
이해원씨는 50대에 접어들어 시작(詩作)을 했고, 64세 늦깎이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늦게 시작한 분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젊은 문학도의 길을 가로막은 건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는 당선 소감에도 따스함이 묻어난다.
문학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며 도전정신으로 일궈 낸 아름다운 열매가 더 값지다. 60부터 청춘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규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