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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큰 키나무

고향과 큰 키나무

by 운영자 2012.01.31

설 연휴에 대한민국 국민 중 절반 이상이 고향을 찾아 떠난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어디에도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설을 비롯한 명절에 고향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곳에 부모님이 계시고, 자신의 정체성이 그곳에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나무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대한민국 어느 농촌마을이든 마을 사람들이 믿는 나무들이 살고 있다. 그 나무들을 '당산나무' 혹은 '신목'이라 부른다. 대한민국 국민 중 농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부모님들이 당산나무에게 빌어 탄생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늘 그 나무와 함께 성장했고, 고향에 내려가면 그 나무와 다시 만난다. 맹자는 큰 나무가 있는 곳이 고국(故國)이라 아니라 대대로 내려오는 신하, 즉 세신(世臣)이 있어야 고국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마을에 큰 나무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나무를 심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마을에 대를 이어오는 큰 인물도 있어야 고국이라 부를 수 있다면 큰 나무 자체도 세신과 다를 바 없다. 큰 나무와 세신은 동격일 수 있다.

큰 나무에 전설이 녹아 있고, 그 전설에는 큰 인물과 관련한 얘기가 많은 것도 사람과 큰 나무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나라 양반집에서는 자식을 낳으면 나무를 심곤 했다. 그래서 현재 몇 백 년 동안 살고 있는 마을의 큰 나무 중에는 그 마을에 처음 들어온 양반이 심은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사람을 나무에 비유해서 '인재(人材)'라 불렀던 것도 사람의 삶이 나무의 삶처럼 닮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명절 때 고향을 찾아 큰 나무아래 모여 오랜만에 만난 친지와 친구들과 오순도순 얘길 나누는 모습이 정말 정겹다. 사람들이 동네 어귀의 한 그루 나무에 모이는 것은 그 나무가 동네의 역사와 동네 사람들의 얘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고향에도 백 년 동안 살고 있는 은행나무가 있다. 암수 딴 그루의 은행나무는 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러나 이제 부모님이 돌아가신 자식들은 명절이라도 고향을 찾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산천은 의구(依舊)하지만 인걸은 간데없다. 그런데 옛날 생각을 더듬어 고향 이곳저곳을 다니면 산천도 옛날 같지 않는 곳이 정말 많다.

세월이 흐르면 산천인들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없지만, 인간이 손댄 산천이 많은 게 문제다. 특히 편리를 위해 만든 크고 작은 길이 많아 짜증스럽다.

내가 농촌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짜증내 는 것은 단순히 가장 생태적이어야 할 농촌이 오히려 비생태적인 곳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농촌이 비생태적인 곳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나 자신이 어떤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농촌의 큰 나무들은 한국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그래서 설날 고향에서 한 그루의 나무와 만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강판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