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폭력에 오염된 아이들

폭력에 오염된 아이들

by 운영자 2012.02.06

요즘 학교폭력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잊고 있었던 군대생활의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날 고참병들이 구석진 곳으로 불러내더니 다짜고짜 “지금 비가 오고 있지?” 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닙니다!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신병답게 큰소리로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여기저기 주먹이 날아 왔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늘같은 고참병의 말에 토를 달았기 때문이랍니다.

한 참 두들겨 패더니 “지금 비가 내리고 있지?” 다시 묻더군요. 나는 당연히 “네 그렇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대답했지요.

그러나 또 두들겨 맞았습니다. 눈이 내리는데 비가 내린다고 거짓말했다는 이유이지요. 하긴 애당초 두들겨 패주는 것이 목적이니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을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폭력이 수단인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폭력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개인이나 집단이나 힘 있이 있으면 힘자랑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자랑하고 싶어도 우리 사회가 폭력을 금기시 한다면 자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약자를 보호하는데 힘을 사용하게 되지요. 소위 “사회화된 힘” 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보다보면 아이들이 돈을 뺏고 옷을 뺏으려 폭력을 휘두르는 것 같이 느끼게 됩니다. 폭력을 수단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으로 믿고 “때린 이유” 를 캐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폭력에 이유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유 없는 폭력이 더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때리는 사람은 이유가 있지만 맞는 입장에서는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폭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은연중 폭력을 정당화하고 폭력을 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영화 한 편을 봤는데 정말 잔인하더군요.

그러나 젊은 관객들의 공통된 반응은 ‘멋있다’ 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영화는 학교폭력을 미화하고 영화의 ‘짱’ 들은 의리 있고 영웅적인 존재로 설정돼 있으니 아이들은 주인공처럼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지요.

영화뿐만 아닙니다. 주변을 돌아보세요. 상업주의에 물든 천박한 문화가 폭력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정치인들이 폭력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폭력을 가르치고 폭력문화를 부추기면서 폭력의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일입니다. 학교 폭력이 심각하다면서 원인 찾기에 골몰하는 어른들, 자기가 방귀 뀌고서 누가 방귀 뀌었느냐 화를 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이 폭력에 오염되었습니다. 폭력으로 찌든 세상에서 , 아이들만 멀쩡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가당찮습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자신이 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좁은 공간에 방귀를 뀌었다면 장본인 색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인성을 따지기 전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은 바로 부모들이고 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염된 환경부터 개선해야겠지요!

이성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