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작은 '덩달이' 결국은 '노력'

시작은 '덩달이' 결국은 '노력'

by 운영자 2012.02.13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기르는데 전념했던 친구는 남매 둘 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그동안 못한 것을 벌충하느라 이것저것 배우고 봉사하러 다니느라 엄청 바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해 앞날을 대비할 겸 봉사하는 데도 보탬이 될 것 같다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했습니다.

교육원에 상담하러 간다는 친구의 전화 한 통에 버스 한 정거장 거리에 사는 이 덩달이 친구가 따라나섰습니다.

교육 과정과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두 아줌마는 말 그대로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그 자리에서 등록을 하고 함께 열심히 공부해서 꼭 자격증을 따자고 굳은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이들 방학 동안 바깥일을 대폭 줄인 저는 교재를 뒤적이며 마음 편하게 개강을 기다렸지만, 이미 컴퓨터며 요가며 배우는 것이 많았던 친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고 결국 첫 수업을 앞두고 등록을 취소하고 수강료를 돌려받고야 말았습니다.

힘들어도 하는 김에 같이 하자, 사람의 에너지가 백이라고 할 때 백이십 정도를 써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시작이 반이니 일단 하면 금방 끝날 거다,

등등 온갖 말을 다 동원했지만 친구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혹시 먼저 포기했다면 모를까 친구가 그만뒀다고 따라서 그만두기도 낯이 안서는 일 같아서 하는 수 없이 혼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었던 저만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어이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습니다. 물론 노인복지를 하는 사회복지사로 요양보호사 공부가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시작이 반이라고 눈 깜짝할 사이에 4주의 이론수업이 끝났고 이제 8시간의 실습과 3월의 자격증 시험이 남았습니다.

제가 친구 따라 강남 간 것이 비단 이번만은 아니어서, 대학 신입생 때 재수를 하던 친구가 모 방송국 성우시험을 보고 싶은데 혼자 가기 쑥스럽다며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왕 간 것 나란히 원서를 냈고 결과는 저만 합격이었습니다. 속상해서 우는 친구 옆에서 느낀 황당함이라니요. 합격을 열망했던 친구는 긴장을 해서 실력 발휘를 못했던 것 같고, 아무 부담이 없었던 저는 오히려 여유만만해서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게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최종면접에서 방송활동을 할 수 없는 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유야무야됐지만 결국 그 경험이 졸업 후 진로에 영향을 주었으니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귀 얇은 저는 친구 따라 강남 간 기억이 이밖에도 무척 많습니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나쁜 길로 인도하지 않았기에 뜻밖의 열매를 얻고 좋아했던 적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번에 같이 공부하지 못한 친구는 나중에 꼭 다시 도전한다고 하니 그때는 제가 나서서 열렬히 응원해 줄 생각입니다.

유경<작가>
작가 유경은 전 CBS라디오 아나운서로 활동했으며, 가천의과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초빙교수와 노인대학 및 사회교육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마흔에서 아흔까지》 《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