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불평 대신 희망으로

불평 대신 희망으로

by 운영자 2012.02.27

새봄이 시작되었다. 계절은 새 생명들을 잉태할 준비를 마치고 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새로움에 설레는 사람들보다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내일은 해가 뜬다고 노래하면서도 새로운 날들을 두려워한다. 미래의 희망을 말하면서 내심으로는 두려워하고 있다. 왜 그럴까? 미래에 가서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일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런데 오늘 하루 동안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신문을 보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로 가득 차 있다. 환경운동가들은 환경오염으로 곧 망할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치고 있다.

정치인들은 불평등으로 우리 사회가 붕괴될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지식인들은 쉴 새 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티끌이라도 들추어 매사를 비판하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고 외쳐야 의식이 있는 엘리트로 인정받는다.

물론 환경파괴나 불평등, 약육강식과 같은 악덕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러한 악덕은 피할 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실 우리가 살아 숨 쉰다는 것 그 자체가 살생이요 환경파괴이다. 내가 먹고 산다는 것은 곧 무엇인가를 파괴하고 죽이는 것이다. 보라! 오늘도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 살생하고 환경을 파괴하였다.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악덕이 아닌가? 그러나 지구에 거주하는 수십억에 달하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이러한 악덕은 결코 피할 길이 없다.

게다가 인간사회의 진보과정에서 새로운 악덕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우리는 언제나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 해결 자체가 또 다른 문제를 가져 온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악덕들 중에는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으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도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는 것은 잊어버리고, 잃는 것만 내세워 삿대질하는 불평 열망이 넘쳐흐르고 있다. 정치가, 시민운동가, 지식인들은 실제 상황과 상관없이 슬프다고 외치려는 “우울 집단이익 욕구”를 갖고 있다. 내일은 없다고 외치고 불평열망을 자극해야 자신들이 당선되고, 존재감을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왕족들이 누리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언론이 떠들어대고, 정치가와 환경운동가들이 위협해도 많은 수치와 통계는 '세계가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한다.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곧 망할 것 같지만, 1920년대보다 공기는 오히려 좋아졌고, 기아 때문에 매일 수천 명의 아이들이 굶어죽는다지만 그 수치는 지난 세기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통계적 전망은 중요하지 않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우선 큰 문제가 해결되면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작은 문제에 안달하는 성향 곧 “작은 그림의 횡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불평열망에서 벗어나고 집단이익욕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문제 해결책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미래에서 살 수 있는 지혜를 터득 할 수 있다.

이성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