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살리는' 공정여행

'살리는' 공정여행

by 운영자 2012.03.02

‘여행이란 무엇인가?”,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여행은 설렘이다. 일상의 틀을 벗어나는 홀가분한 설렘,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설렘이 풍선처럼 부푼다.

대자연이 빚은 경이로운 풍광과 영욕의 역사가 서린 유적들을 마주하면 벅찬 설렘이 시공을 넘나든다. 낯선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삶은 내 삶을 비춰보는 거울 같은 설렘이다. 여행의 설렘은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의 물이랑이 되어 오래도록 뇌리에 일렁인다.

여행은 오감이다. 만년설 굽어보는 ‘천상의 테라스’ 스위스 융프라우의 희다 못해 파르스름한 빙하는 가슴 저리도록 눈이 시리다.

중국 소림사의 '선종소림 음악대전'은 쑹산(崇山) 협곡을 무대로 700여명이 출연한 가장 스케일이 큰 환상의 공연으로 눈과 귀가 즐겁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을 무심히 바라보며 무채색의 사념에 빠져든다.

천인단애의 험준한 차마고도는 험한 세상, 힘든 삶처럼 아찔하고 위태롭다. 그 길목에서 만난 오체투지 고행에는 ‘환생의 꿈’이 서려있다.

가장 맛있는 여행은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인디언 전통요리다. 마차를 타고 우거진 삼림으로 들어가니 통나무집 앞에서 모닥불을 피워 바비큐를 굽고, 요리를 만드는 모습은 영화에서 본 서부개척시대의 풍경 그대로다.

옥수수와 콩, 치즈와 야채 등 그 시절 식재료로 만든 음식도 맛깔스러웠지만, 인디언처럼 통나무에 걸터앉아 마시는 진한 원두커피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 향기로 혀끝을 감친다.

여행은 보편화 단계를 넘어 전문화, 특성화, 예술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여행작가, 사진작가, 가이드는 여행이 직업이다.

배낭여행은 젊은이들의 문화코드가 된지 오래고, 자전거로 세계를 누비는 자전거여행가. 지구촌의 외딴 곳만 찾아가는 오지여행가에 문화유적탐방 인구도 부쩍 늘었다. 명상을 통해 자아를 찾는 수련여행과 내면의 상처를 다스리는 치유여행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행은 다변화됐어도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자기중심적이고 소비지향적인 관광의 굴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여행이 다른 사람의 삶과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이른바 ‘공정(fair travel)여행’에 관심이 쏠린다.

대규모 관광지 개발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원주민 공동체와 환경이 파괴되자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자는 데서 태동한 것이 공정여행이다. 유럽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일반화 됐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공정여행 기반시설이 턱없이 모자라지만 맘먹기 나름이다. 일회용품이나 가전제품은 가능한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에너지소비가 줄고 환경도 보존된다.

숙소와 음식은 현지주민이 운영하는 민박 등을 이용하고, 현지에서 생산된 물건을 구입하면 믿을 수 있어 좋고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현지 주민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삶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공정여행은 배려와 나눔으로 더불어 살자는 착한 여행이다. 나는 오늘도 설렘으로 짐을 꾸린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북 아프리카 모로코로 떠나기 위해.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