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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똥

꽃과 똥

by 운영자 2012.04.04

남쪽에선 벌써 벚꽃 소식이 들려옵니다. 사람은 굼뜨고 게으르지만 계절은 어김이 없어 겨울을 견딘 생명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눈을 뜨고 있습니다. 한 번 피기가 어렵지 이내 눈부신 꽃물결이 되어 사방으로 번져갈 것입니다.

김지하 시인의 시 중에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공감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혹은 신심의 깊이가 담겨 있다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벚꽃의 화려함에 눈이 가지만 이내 지는 걸 보니 변함이 없는 푸른 솔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은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푸른 솔을 좋아하다 보니 벚꽃이 다시 좋아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꽤 여러 해 전이었습니다. 활짝 핀 벚꽃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날이었습니다. 큰애는 포말 같다 했고 둘째는 함박눈 같다 했던, 내게는 한 덩어리 솜사탕 같기도 했던 아파트 앞 벚나무 하얀 꽃잎이 바람을 타니 다시 한 번 눈이 부셨습니다.

부는 바람을 타고 하얀 꽃잎들이 날리기 시작했는데, 마치 그 모습이 한겨울에 날리는 눈과도 같았습니다. 이내 나무 주변엔 눈이 쌓이듯 하얀 꽃잎이 쌓였지요.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가는 길에 주차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누군가 눈 똥이 계단 한 구석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뱀이 꽈리를 튼 듯한 형상, 짐승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어찌 사람이 다니는 계단에 일을 보았을까, 얼굴과 코를 찡그리며 불쾌한 마음으로 눈을 돌리려는데 이게 또 웬일이겠습니까? 얼핏 눈에 띄는 것이 또 한 가지 있었습니다.

똥 위에 놓인 하얀 점들, 꽃잎이었습니다. 사방 날리던 하얀 꽃잎 몇 개가 똥 위에도 날아와 앉았던 것입니다.

불쾌했던 마음을 접고 똥 위에 날아와 앉은 꽃잎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꽃잎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면 어때요, 누구면 어때요, 저는 괜찮아요, 어디에 떨어져도 저는 꽃일 걸요, 꽃잎만큼 작고 앙증맞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기 손톱 같은 작은 꽃잎이 똥 위에 앉아 전하는 말에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조선시대 시인 유금의 시집 ‘말똥구슬’이 있습니다. 원래의 이름은 ‘양환집’인데, 그 의미를 살려 ‘말똥구슬’이라는 이름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어렵지 않게 보았던 것이 말똥구리입니다.

말똥을 굴리면 말똥구리, 쇠똥을 굴리면 쇠똥구리가 되었지요. 때로는 거꾸로 서서 쇠똥이나 말똥을 굴려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신기하기가 그지없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양환집의 서문을 당대의 문필가 연암 박지원이 썼는데, 서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말똥구리는 제가 굴리는 말똥을 사랑함으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용 또한 자기에게 여의주가 있다 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 법일세.”

자기가 굴리는 말똥을 사랑함으로 용의 여의주를 비웃지 않는 말똥구리, 사람들이 코를 쥐고 외면한다고 덩달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날아와 똥 위에 앉는 하얀 벚꽃들, 모두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변의 어둡고 그늘진 곳을 만날 때일수록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똥 위에 앉은 하얀 꽃잎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