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참 잔인한 4월

참 잔인한 4월

by 운영자 2012.04.13

올 봄 꽃샘추위는 유별나다. 꽃들이 더디 피는 바람에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열렸고, 봄의 전령사 개나리도 예년보다 늦게 노란 웃음보를 터트렸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황사도 달갑지 않은 데 올해는 황사발원지 부근의 소금호수가 말라붙어 염분이 섞인 황사까지 날아온다니 기후와 환경의 변화는 종잡기 어렵다.

2∼3월이면 알을 낳던 개구리도 산란이 늦어지는 등 생태계가 몸살을 앓는다. 4월의 기상(氣象)만 얄궂은 게 아니다. 심술궂은 강풍은 겨우내 정성들여 가꾼 채소 비닐하우스를 찢어 버리는가하면 전동차마저 멈춰 세웠다.

시속 20~30㎞의 강풍에 잠실철교 위 전력공급선이 늘어져 단전되는 바람에 전동차가 멈추면서 철교 위를 시민들이 걸어 나오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날 지하철 2호선을 타려다가 영문도 모른 채 마냥 기다리는 불편을 겪었으나 안내방송도 안내 게시판도 없었다. 전철의 잦은 고장은 어제오늘일은 아니다.

지난달에도 지하철 1호선 서울역과 종로3가역에서 발생한 전동차출입문 고장과 탈선으로 서울역~청량리역 구간 상ㆍ하행선 운행이 3시간가량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해 출근 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KTX의 역주행과 정차 역을 통과하는 황당한 사고도 잇달았다.

승객의 안전과 편의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기관사가 늦은 시간 지하철 6호선 월곡역에서열차 출발을 지연시키면서 회사의 인사 발령에 대한 불만을 열차 안내 방송으로 늘어놓았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시민을 볼모로 개인의 인사 불만을 털어놓은 것은 직분을 망각한 일탈행위다. 서울지하철은 하루 평균 660만 여명이 이용하는 시민의 발이다. 전철사고는 탈선 등 큰 사고로 이어져 많은 인명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시설 점검과 안전관리는 물론 종사자들이 잠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토막살인사건’이다. 경찰의 초동조치 미흡 등 총체적 부실수사로 성실하고 착한 여성근로자가 처참하게 살해되어 분노가 치솟는다. 피해자가 112신고로 ‘집 안’임을 밝혔는데도 접수표에 입력하지 않았고, 이동통신 기지국을 통해 확인한 신고자의 위치도 출동한 경찰팀에 전달되지 않아 도로와 빈집, 학교 운동장 등 엉뚱한 곳을 수색했다니 어처구니없다.

경찰청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그 걸로 끝낼 일이 아니다. 사건과 비리가 터질 때마다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고 인사조치 등 충격요법을 써 왔지만 달라진 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아무리 제도와 시스템을 보완해도 경찰 조직이 무기력하고, 근무 기강이 흐트러지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밤중에 사이렌을 울리고 탐문수사를 한다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법석을 피웠다가 주민 민원이 들어오면 다친다는 무사안일도 문제다.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할 경찰의 초동수사가 이렇게 미흡하고, 신뢰가 무너져서야 시민들이 맘 놓고 밤길을 다닐 수 있겠는가. 구멍 뚫린 공직기강에 사회안전망은 겉돌고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래저래 4월은 참 잔인하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