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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덕목: 적재적소

지도자의 덕목: 적재적소

by 운영자 2012.05.10

적재적소(適材適所)는 한 존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다. 누구든 자신의 능력에 맞는 위치에서 평생 살길 바란다. 지도자의 덕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임명하는 일이다.

권력자의 측근비리도 인재를 적재적소에 임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임명하려면 장소와 인물간의 관계를 면밀히 검토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그 조직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 심기도 적재적소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나무 심기는 적재적소를 벗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자체에서는 식목일을 전후해서 곳곳에 많은 나무를 심었다. 문제는 심은 나무를 보면 나무의 특성이나 자연생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냥 무식하게 심은 경우가 많다.

내가 살고 있는 하천 둑에도 식목일에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대부분 물푸레나뭇과의 이팝나무이다. 몇 해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이팝나무 심기는 한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노력이지만, 심각한 문제는 심지 말아야할 곳에도 나무를 심는다는 점이다.

이미 하천 둑에는 나무들이 많이 있는데도 조그마한 빈 공간에 다시 이팝나무를 심는 행위는 행정과 예산 낭비의 전형이다.

나무 심기는 나무의 특성과 장소를 잘 살펴야만 한다. 이팝나무는 갈잎 키가 큰 나무이다.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는 터전이 넓어야만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심은 나무를 보면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어느 기관인지 모르지만 식목일 즈음 내가 매일 다니는 고속도로 주변에 이팝나무를 심었다.

이곳은 하루에 엄청난 차량이 다닌다. 나의 상식으로는 이런 곳에 키가 크게 자라는 이팝나무를 심는 것 자체가 그저 놀랍다. 이곳에는 키 큰 나무를 절대 심을 수 없다. 만약 나무를 심으려면 키 작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큰 키 나무는 심을 당시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점차 자라면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무가 많이 자랐을 경우 장마 혹은 태풍을 만나면 넘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나무가 넘어지면 차의 운전자는 그런 위험을 예방할 방법이 없다. 이곳 고속도로의 지형 상 나무는 반드시 도로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을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결코 이곳에 키가 큰 이팝나무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의 이팝나무는 절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인간은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가지를 자르거나 심지어 줄기를 자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이팝나무를 선택한 것은 전형적인 보여주기 행정이다.

몇 칠 전 고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나무를 적재적소에 심지 않은 광경을 보았다. 국도의 가파른 언덕에 살고 있는 목련과의 목백합은 잎이 무성해야하지만 목이 잘린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30미터 이상 자라는 미국산 목백합을 국도의 언덕에 심은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다. 그러니 이곳의 목백합은 인간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평생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한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언제까지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적재적소는 한국의 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시금석이다.

강판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