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는 삶을 원한다
모든 존재는 삶을 원한다
by 운영자 2012.05.15
젊은 나그네가 시골길을 가는 도중, 날이 저물었다. 나그네가 겨우 여관을 찾아 들어갔으나 주모는 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방값을 내지 않고 줄행랑을 칠 사람으로 보여 방을 주지 않았다. 나그네는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뜰 앞마당 언저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주모 아들이 어머니의 진주보석을 가지고 마당에서 놀다가 땅에 떨어뜨렸는데, 그 순간 곁에 있던 흰 거위가 그것을 삼켜버렸다. 주모는 진주를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하자, 뜰에 앉아있던 나그네를 의심하고 그를 꽁꽁 묶었다. 이슥한 밤인지라 다음날 아침에 관가로 데리고 갈 작정을 하고 있는데, 나그네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주모는 더욱 화가나 나그네에게 ‘진주를 내어 놓으라’고 다그치자, 그는 주인에게 거위도 묶어서 자기 곁에 두기를 청했다.
이튿날 아침, 거위가 눈 똥 속에서 진주가 나왔다. 주인은 너무도 부끄러워 사과를 하며 ‘왜 어젯밤 거위가 먹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나그네가 대답했다.
“만약 내가 어제 밤에 거위가 진주를 먹었다고 했다면 당신은 당장 거위의 배를 가르고 진주를 찾았을 것이오. 하루만 기다리면 되는데 괜한 생명을 해칠까봐 말하지 않았던 것이오.”
이 나그네는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윤회尹淮(1380~1436)라는 사람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을 하는지라 세상물정을 알기위해 텔레비전 방송을 종종 시청한다.
그런데 TV를 보면서 놀라운 일이 많다. 너무 생명을 경외시한다는 점이다.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문어 다리를 잘라서 입에 넣고, 살아 있는 어류를 칼로 자르며, 개나 고양이를 때리고, 살아있는 어류를 펄펄 끓는 찌개 그릇에 넣으며 입맛까지 다시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된다.
아무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이 세상 모든 생명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생명을 너무 함부로 하고 있다. 조류독감에 걸린 콜레라가 발생해 돼지나 소를 산채로 묻는 것도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건만 파닥거리는 생명을 죽이고 동물을 학대하면서 자랑까지 하고 있으니, 이는 인간의 오만과 만용이다. 인도에서 안거安居라는 수행제도가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동안 스님들이 한곳에 안주(약90일간)해서 수행하는 방법이다. 이 제도가 생기게 된데는 비가 많이 내려 탁발을 다니는 일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습한 날씨에 벌레가 많은데, 스님들이 길을 가다 벌레들을 밟아 죽이기 때문에 한곳에 머물러 수행하는 것이다.
불살생 계율과 관련된 스님들의 관습법적 생활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스님들은 하수구에 뜨거운 물도 바로 버리지 않고 식혔다가 버린다.
습한 하수구 주위에 있는 생명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다. 옛날 노스님들은 길을 갈 때 지팡이에 방울을 달아 소리를 내었다. 기어 다니는 작은 생명들이 사람이 지나가니 밟혀 죽지 말고 피하라는 뜻이다.
또 몸이나 옷에 이가 많았던 시절, 스님들은 옷을 갈아입을 때 바로 빨지 않고 옷을 나무에 걸어두어 이가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 옷을 빨았다는 일화도 전한다.
또한 스님들은 가능한 더운 여름에도 모기향을 피우지 않는다. 모기가 피부에 닿아 본능적으로 모기를 죽이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피를 보시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려들의 생활을 비생산적인 견해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만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표본으로 보았으면 한다. 생명을 소중히 하는 승려들의 행동을 나열하면 몇 십장을 써도 모자랄 지경이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중의 일부는 출가 승려이니까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도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다른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거나 함부로 살상해서는 안된다.
내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처럼 모든 생명이 살기를 원하지 죽음을 원하지 않는 법이다.
정운 <스님>
그때 주모 아들이 어머니의 진주보석을 가지고 마당에서 놀다가 땅에 떨어뜨렸는데, 그 순간 곁에 있던 흰 거위가 그것을 삼켜버렸다. 주모는 진주를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하자, 뜰에 앉아있던 나그네를 의심하고 그를 꽁꽁 묶었다. 이슥한 밤인지라 다음날 아침에 관가로 데리고 갈 작정을 하고 있는데, 나그네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주모는 더욱 화가나 나그네에게 ‘진주를 내어 놓으라’고 다그치자, 그는 주인에게 거위도 묶어서 자기 곁에 두기를 청했다.
이튿날 아침, 거위가 눈 똥 속에서 진주가 나왔다. 주인은 너무도 부끄러워 사과를 하며 ‘왜 어젯밤 거위가 먹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나그네가 대답했다.
“만약 내가 어제 밤에 거위가 진주를 먹었다고 했다면 당신은 당장 거위의 배를 가르고 진주를 찾았을 것이오. 하루만 기다리면 되는데 괜한 생명을 해칠까봐 말하지 않았던 것이오.”
이 나그네는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윤회尹淮(1380~1436)라는 사람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을 하는지라 세상물정을 알기위해 텔레비전 방송을 종종 시청한다.
그런데 TV를 보면서 놀라운 일이 많다. 너무 생명을 경외시한다는 점이다.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문어 다리를 잘라서 입에 넣고, 살아 있는 어류를 칼로 자르며, 개나 고양이를 때리고, 살아있는 어류를 펄펄 끓는 찌개 그릇에 넣으며 입맛까지 다시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된다.
아무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이 세상 모든 생명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생명을 너무 함부로 하고 있다. 조류독감에 걸린 콜레라가 발생해 돼지나 소를 산채로 묻는 것도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건만 파닥거리는 생명을 죽이고 동물을 학대하면서 자랑까지 하고 있으니, 이는 인간의 오만과 만용이다. 인도에서 안거安居라는 수행제도가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동안 스님들이 한곳에 안주(약90일간)해서 수행하는 방법이다. 이 제도가 생기게 된데는 비가 많이 내려 탁발을 다니는 일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습한 날씨에 벌레가 많은데, 스님들이 길을 가다 벌레들을 밟아 죽이기 때문에 한곳에 머물러 수행하는 것이다.
불살생 계율과 관련된 스님들의 관습법적 생활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스님들은 하수구에 뜨거운 물도 바로 버리지 않고 식혔다가 버린다.
습한 하수구 주위에 있는 생명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다. 옛날 노스님들은 길을 갈 때 지팡이에 방울을 달아 소리를 내었다. 기어 다니는 작은 생명들이 사람이 지나가니 밟혀 죽지 말고 피하라는 뜻이다.
또 몸이나 옷에 이가 많았던 시절, 스님들은 옷을 갈아입을 때 바로 빨지 않고 옷을 나무에 걸어두어 이가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 옷을 빨았다는 일화도 전한다.
또한 스님들은 가능한 더운 여름에도 모기향을 피우지 않는다. 모기가 피부에 닿아 본능적으로 모기를 죽이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피를 보시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려들의 생활을 비생산적인 견해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만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표본으로 보았으면 한다. 생명을 소중히 하는 승려들의 행동을 나열하면 몇 십장을 써도 모자랄 지경이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중의 일부는 출가 승려이니까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도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다른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거나 함부로 살상해서는 안된다.
내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처럼 모든 생명이 살기를 원하지 죽음을 원하지 않는 법이다.
정운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