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 며느리 뭉치다!

세 며느리 뭉치다!

by 운영자 2012.06.18

처음에는 무척 걱정을 했습니다. 고령에 병환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입원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 순조롭게 회복되어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셨습니다.

85세 시아버지께서 감기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은 것이 원인이 돼 폐렴으로 입원을 하셨던 지난 한 주간 동안 가족들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지관 일본어 교실의 자원봉사 강사로 여전히 현역이신 깔끔하고 꼼꼼한 시아버지, 그렇지만 병에는 장사가 없어 환자복을 입은 수척한 몸에 며칠 새 자라난 수염이 새하얗습니다. 몸이 아프니 자주 역정을 내십니다.

거기다가 혹시 위중한 병은 아닌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도 언뜻 언뜻 내비칩니다. 당장 간병을 해야 하는 삼형제 부부는 일정을 맞추느라 머리를 맞댔지만, 모두 맞벌이니 도리 없이 간병인에게 부탁을 하기로 하고 번갈아 아버님을 찾아뵙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환자를 돌보는 일은 여성의 일이라 생각하게 마련이라서 아들들보다는 며느리들에게 좀 더 무게가 얹힌 것은 사실입니다.

일하랴 틈틈이 병원에 들르랴 아이들 챙기랴 금세 지친 기색들이 역력합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몸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아버님이 무사히 퇴원해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는 데 손위 큰 동서의 문자 한통이 날아왔습니다.

며느리 셋의 회동을 제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반색을 하며 달려 나가, 둘째인 제가 결혼한 지 20년이 넘어 처음으로 며느리 셋만 음식점 조용한 창가에 둘러앉았습니다.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집안 경조사에서 만나면 식구와 손님들 뒷바라지 하느라 여념이 없고 또 아이들 어릴 때는 각자 자기 아이들 돌보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색시로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들을 떠올려봅니다.

서로 이름도 성도 고향도 살아온 곳도 가족사항도 학교도 성격도 다 다른 여자 셋이 결혼을 통해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리 잡고 부대끼며 살아온 것이 신기하기조차 했습니다.

모처럼 여유 있게 마주보며 그동안의 수고를 서로 위로하고, 아버님 어머님의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하며, 사촌인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 밀린 이야기들을 쏟아냅니다.

모든 것이 낯선 시집에서 며느리라는 같은 처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어찌 좋기만 했겠습니까. 때론 마음이 맞지 않아 불편하고 서운했고 생각이 달라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좋기만 하겠습니까. 때론 힘들기도 하겠지요. 그래도 ‘동서 시집살이는 오뉴월에도 서릿발 친다’는 속담은 해당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세 며느리 모두 서로를 제대로 알아가고 이해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이만큼 키워준 세월의 힘 또한 믿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무척 걱정을 했습니다. 고령에 병환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입원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 순조롭게 회복되어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셨습니다. 85세 시아버지께서 감기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은 것이 원인이 돼 폐렴으로 입원을 하셨던 지난 한 주간 동안 가족들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지관 일본어 교실의 자원봉사 강사로 여전히 현역이신 깔끔하고 꼼꼼한 시아버지, 그렇지만 병에는 장사가 없어 환자복을 입은 수척한 몸에 며칠 새 자라난 수염이 새하얗습니다. 몸이 아프니 자주 역정을 내십니다. 거기다가 혹시 위중한 병은 아닌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도 언뜻 언뜻 내비칩니다.

당장 간병을 해야 하는 삼형제 부부는 일정을 맞추느라 머리를 맞댔지만, 모두 맞벌이니 도리 없이 간병인에게 부탁을 하기로 하고 번갈아 아버님을 찾아뵙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환자를 돌보는 일은 여성의 일이라 생각하게 마련이라서 아들들보다는 며느리들에게 좀 더 무게가 얹힌 것은 사실입니다.

일하랴 틈틈이 병원에 들르랴 아이들 챙기랴 금세 지친 기색들이 역력합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몸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아버님이 무사히 퇴원해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는 데 손위 큰 동서의 문자 한통이 날아왔습니다. 며느리 셋의 회동을 제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반색을 하며 달려 나가, 둘째인 제가 결혼한 지 20년이 넘어 처음으로 며느리 셋만 음식점 조용한 창가에 둘러앉았습니다.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집안 경조사에서 만나면 식구와 손님들 뒷바라지 하느라 여념이 없고 또 아이들 어릴 때는 각자 자기 아이들 돌보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색시로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들을 떠올려봅니다.

서로 이름도 성도 고향도 살아온 곳도 가족사항도 학교도 성격도 다 다른 여자 셋이 결혼을 통해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리 잡고 부대끼며 살아온 것이 신기하기조차 했습니다. 모처럼 여유 있게 마주보며 그동안의 수고를 서로 위로하고, 아버님 어머님의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하며, 사촌인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 밀린 이야기들을 쏟아냅니다.

모든 것이 낯선 시집에서 며느리라는 같은 처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어찌 좋기만 했겠습니까. 때론 마음이 맞지 않아 불편하고 서운했고 생각이 달라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좋기만 하겠습니까. 때론 힘들기도 하겠지요. 그래도 ‘동서 시집살이는 오뉴월에도 서릿발 친다’는 속담은 해당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세 며느리 모두 서로를 제대로 알아가고 이해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이만큼 키워준 세월의 힘 또한 믿기 때문입니다.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