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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광이 보이거들랑

비어 있는 광이 보이거들랑

by 운영자 2012.07.04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얼마나 반가운지요?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나무들처럼, 우리들 마음까지가 다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 사막 길을 걷느라 목이 마를 대로 마른 나그네가 시원한 물을 만나 벌컥벌컥 그 물을 대번 마시듯이, 메마른 땅이 모처럼 내린 빗물을 달디달게 삼키고 있지 싶습니다.

이런 반가운 비를 두고 흔히들 단비라 하지만, 누구보다 비를 기다렸을 농촌에서는 약비라 했습니다. 아픈 이를 살리는 약과 같은 비라는 뜻이겠지요. 긴 가뭄으로 자치고 메말랐던 우리의 마음에도 생기와 여유가 회복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해 전 농촌에서 살 때 있었던 일 중 지금도 기억하는 일이 있습니다. 초등학교가 있는 아랫말 보건지소 옆에 한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작고 허름한 집이었는데, 아주머니는 하루하루 품을 팔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이웃 동네 하우스로 일을 나서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전날 땔감이 떨어졌고, 광이 비어 있는 것을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확인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까짓것 저녁이야 해놓은 찬밥으로 같이 사는 아들과 대충 먹으면 됐지만 결국 냉방에서 자게 생겼으니, 며칠째 몸이 좋지 않아 힘이 없는 아들이 맘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퇴근길은 이미 땅거미 진 어둘 녘, 일마치고 돌아와 밤중에 나무를 할 순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들어서던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텅 비어 있던 광에 이게 웬일, 나무가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마치 도깨비에 홀린 듯싶어 껌벅껌벅 눈을 껌벅여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분명히 광엔 나무가 가득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짐작이 되는 것이 없어서 앞집에 사는 할머니한테 달려가 물으니 사연인즉슨 이러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이웃이 우연히 아주머니네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웃 동네로 일을 하러 다니느라 나무를 할 틈이 없다는 것을 안 그가 일부러 아주머니네 집을 찾아와 광을 둘러보았더니, 정말로 광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네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가 자기 남편에게 사정 이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을 반장이기도 한 남편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기꺼이 산에 올라 나무를 했고, 지게에 져서 나르기에는 양이 많아 지나가는 경운기를 불러 세웠습니다. 마침 봄 농사 준비하느라 퇴비를 나르고 돌아가던 길, 운전하던 마을분이 흔쾌하게 일을 거들었습니다.

두 장정이 일을 하니 까짓 빈 광 하나를 채우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텅 비었던 광에 금방 나무가 그득해졌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퇴근을 하던 아주머니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집을 비운 낮 동안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일이 너무도 고마웠던 아주머니는 아들 중학교 입학을 준비하러 면에 다녀오는 길, 양말 두 켤레씩을 샀고 거듭거듭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날 나무를 한 이들에게 전했습니다.

긴 가뭄을 겪으며 원치 않았던 서운한 일들이 혹시 있지 않았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정을 먹고 살아갑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그것이 나무 광이든 마음의 광이든 비어있는 광이 보이거들랑 따뜻한 사랑으로 가만 채워보면 어떨지요?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