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뒤란의 참나리꽃
고향집 뒤란의 참나리꽃
by 운영자 2012.08.02
아파트 후문 곁에 노인정이 있다. 그 노인정 뒤에 작은 뜰이 있다. 처음엔 아늑했을 텐데 후문 방향에 전철역이 생기면서부터 출입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바람에 뒤뜰이 노출되고 있다. 그 작은 뒤뜰에도 꽃밭이 있다. 봄이면 곰취 십여 포기 올라온다. 손을 대지 않고 가만 두어 그런지 벌써 몇 년째 여름이면 곰치꽃이 노랗게 핀다. 곰취 곁에 참나리가 있다. 참나리 서너 포기도 덩달아 기세좋게 크고 있다.
오늘 출근길이다. 아침해가 막 뜨는 그 시각인데 나리꽃이 붉게 피었다. 빨간꽃빛이 희뿜한 아침빛과 어우러져 아주 고혹적이다. 나는 한참이나 나리꽃을 지켜보다 출근길을 재촉했다.
고향집 뒤란에도 참나리가 있다. 농가라 뒤란이 넓다. 한가운데엔 장독대가 있고, 장독대엔 십여 명의 가족을 먹여살리는 장독들이 서 있다.
고추장, 된장, 막장, 간장독들과 소금독이다. 장독대 왼쪽엔 김칫독을 묻는 큼직한 헛간이 있고, 장독대 오른쪽엔 깨어진 기왓쪽을 흙에 끼워쌓은 높은 굴뚝이 있다. 그 굴뚝 주위엔 석류나무, 돌배, 늙은 뽕나무와 그 아래에 원추리와 봉숭아꽃이 있다.
참나리는 장독대와 김치헛간 사이에 있었다. 참나리는 본디 절로 씨앗이 떨어져 번식을 하거나 알뿌리로 증식을 한다. 그런 탓에 이맘쯤이면 나리꽃무덕이 우거진다.
그게 바람에 쓰러질까봐 아버지는 커다란 말뚝을 여러 개 둘러박아 새끼줄로 둘러쳐 주셨다. 그들이 무성하게 자라올라 꽃이 피면 정말이지 볼만하다.
여름이면 보통 안방문과 뒷방문을 활짝 열어놓는데 안마당에 서면 그 열린 문들을 통해 뒤란 참나리꽃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집에 찾아오는 이들이 볼 수 있게 안방문, 뒷방문, 뒤란문을 열어두셨다.
“웬 꽃이 저렇게나 좋대요!”어머니는 그 말을 듣기 좋아하셨고, 간혹 꽃구경을 시켜주시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정갈하게 뒤란 가꾸길 좋아하셨다. 뒤란엔 참나리 말고 원추리도 피었다.
원추리는 수북수북한 잎도 좋지만 소박하게 피는 꽃이 더 좋다. 이른 봄, 돌배나무가 순은빛 하얀 배꽃을 피우고 나면 늙은 뽕나무의 오디가 익었고, 나리꽃이 필 때면 석류꽃도 따라 피었다.
석류는 요즘의 수입석류들처럼 굵지 않았다. 주둥이가 익어 터지지 않는, 보잘 것 없는 토종이었다. 열매가 작기는 해도 석류나무숲에 빨갛게 익는 석류는 탐스러웠다.
아침이면 대솥 아궁이에 불을 집어넣고 어머니는 뒤뜰을 쓰셨다. 안마당을 쓰시는 아버지의 비가 댑싸리나 산대비라면 뒤란에서 어머니가 쓰시는 비는 작은 부엌비였다.
안마당이 아버지의 뜰이라면 뒤란은 어머니의 뜰이었다. 어머니의 뜰은 음식의 조미뿐 아니라 기원의 공간이기도 했다. 장독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집안의 안녕을 비셨다.
어머니가 기원을 하시는 방향은 북쪽이었다. 북쪽엔 북두칠성이 있었고, 어머니는 그 별과 마주하며 살얼음 위를 걷듯 세상을 사셨다.참나리꽃은 7,8월을 여름태양처럼 짓붉게 쉬임없이 피고진다.
그렇게 요란하게 피던 꽃도 여름장마가 가고나면 끝이다. 끝이지만 꽃만 끝이다. 싱싱한 줄기와 잎은 참나리씨앗을 익히면서 늦은 가을까지 뒤란을 지킨다.
어쩌다 흐린 날, 굴뚝 연기가 뒤란에 자옥히 내려쌓이면 장독대의 장독뚜껑만 드러난다. 그마저 뽀얗게 차오르면 참나리나 석류나무 우듬지만 보이는데 세상이 깊은 꿈속에 잠긴 듯 하다.
뒤란이 연기로 가득차면 방들도 역시 자옥하다. 그럴 때면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어머니가 부엌에서 기침을 하며 나오신다. 그 어머니가 참나리꽃과 함께 그리운 아침이다.
권영상 <작가>
그 바람에 뒤뜰이 노출되고 있다. 그 작은 뒤뜰에도 꽃밭이 있다. 봄이면 곰취 십여 포기 올라온다. 손을 대지 않고 가만 두어 그런지 벌써 몇 년째 여름이면 곰치꽃이 노랗게 핀다. 곰취 곁에 참나리가 있다. 참나리 서너 포기도 덩달아 기세좋게 크고 있다.
오늘 출근길이다. 아침해가 막 뜨는 그 시각인데 나리꽃이 붉게 피었다. 빨간꽃빛이 희뿜한 아침빛과 어우러져 아주 고혹적이다. 나는 한참이나 나리꽃을 지켜보다 출근길을 재촉했다.
고향집 뒤란에도 참나리가 있다. 농가라 뒤란이 넓다. 한가운데엔 장독대가 있고, 장독대엔 십여 명의 가족을 먹여살리는 장독들이 서 있다.
고추장, 된장, 막장, 간장독들과 소금독이다. 장독대 왼쪽엔 김칫독을 묻는 큼직한 헛간이 있고, 장독대 오른쪽엔 깨어진 기왓쪽을 흙에 끼워쌓은 높은 굴뚝이 있다. 그 굴뚝 주위엔 석류나무, 돌배, 늙은 뽕나무와 그 아래에 원추리와 봉숭아꽃이 있다.
참나리는 장독대와 김치헛간 사이에 있었다. 참나리는 본디 절로 씨앗이 떨어져 번식을 하거나 알뿌리로 증식을 한다. 그런 탓에 이맘쯤이면 나리꽃무덕이 우거진다.
그게 바람에 쓰러질까봐 아버지는 커다란 말뚝을 여러 개 둘러박아 새끼줄로 둘러쳐 주셨다. 그들이 무성하게 자라올라 꽃이 피면 정말이지 볼만하다.
여름이면 보통 안방문과 뒷방문을 활짝 열어놓는데 안마당에 서면 그 열린 문들을 통해 뒤란 참나리꽃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집에 찾아오는 이들이 볼 수 있게 안방문, 뒷방문, 뒤란문을 열어두셨다.
“웬 꽃이 저렇게나 좋대요!”어머니는 그 말을 듣기 좋아하셨고, 간혹 꽃구경을 시켜주시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정갈하게 뒤란 가꾸길 좋아하셨다. 뒤란엔 참나리 말고 원추리도 피었다.
원추리는 수북수북한 잎도 좋지만 소박하게 피는 꽃이 더 좋다. 이른 봄, 돌배나무가 순은빛 하얀 배꽃을 피우고 나면 늙은 뽕나무의 오디가 익었고, 나리꽃이 필 때면 석류꽃도 따라 피었다.
석류는 요즘의 수입석류들처럼 굵지 않았다. 주둥이가 익어 터지지 않는, 보잘 것 없는 토종이었다. 열매가 작기는 해도 석류나무숲에 빨갛게 익는 석류는 탐스러웠다.
아침이면 대솥 아궁이에 불을 집어넣고 어머니는 뒤뜰을 쓰셨다. 안마당을 쓰시는 아버지의 비가 댑싸리나 산대비라면 뒤란에서 어머니가 쓰시는 비는 작은 부엌비였다.
안마당이 아버지의 뜰이라면 뒤란은 어머니의 뜰이었다. 어머니의 뜰은 음식의 조미뿐 아니라 기원의 공간이기도 했다. 장독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집안의 안녕을 비셨다.
어머니가 기원을 하시는 방향은 북쪽이었다. 북쪽엔 북두칠성이 있었고, 어머니는 그 별과 마주하며 살얼음 위를 걷듯 세상을 사셨다.참나리꽃은 7,8월을 여름태양처럼 짓붉게 쉬임없이 피고진다.
그렇게 요란하게 피던 꽃도 여름장마가 가고나면 끝이다. 끝이지만 꽃만 끝이다. 싱싱한 줄기와 잎은 참나리씨앗을 익히면서 늦은 가을까지 뒤란을 지킨다.
어쩌다 흐린 날, 굴뚝 연기가 뒤란에 자옥히 내려쌓이면 장독대의 장독뚜껑만 드러난다. 그마저 뽀얗게 차오르면 참나리나 석류나무 우듬지만 보이는데 세상이 깊은 꿈속에 잠긴 듯 하다.
뒤란이 연기로 가득차면 방들도 역시 자옥하다. 그럴 때면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어머니가 부엌에서 기침을 하며 나오신다. 그 어머니가 참나리꽃과 함께 그리운 아침이다.
권영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