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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혼자 놀아볼까요?

우리, 혼자 놀아볼까요?

by 운영자 2012.08.23

여름방학 내내 과외지도에 학과사무실 시간제 지킴이 아르바이트까지 하느라 쉴 새 없이 돌아치던 큰딸아이가 이제야 한숨 돌린 모양입니다. 학과사무실 업무가 끝났으니 하루만이라도 제발 아침에 깨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가만 놔두었더니 느지막이 일어나 뒹굴뒹굴 합니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 견디고 옆에 와서 종알거립니다. “엄마 심심해!” 아기 같은 응석에 어이가 없어 웃음을 섞어 장난스럽게 대답해 줍니다. “엄마가 놀아줄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어울리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루 스물네 시간 365일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만약 홀로 있는 시간이 전혀 없다면 누구나 심한 갈증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 없이, 자기에 대해 생각하고 살펴보며 느낄 새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바깥에서는 업무상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또 집안에서는 식구들과 이리 저리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오십대 아줌마인 저는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고 애를 씁니다.

힘이 점점 줄어들어 완전히 다 없어지고 마는 소진(消盡)을 예방하기 위한 제 나름의 방법이기도 하고, 오로지 제 자신만을 위해주는 소중한 휴식시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혼자 놀 때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영화 관람입니다. 아침에 식구들 나가자마자 서두르면 1회 영화를 볼 수 있는데 관람료도 할인이 되고 사람도 비교적 적어 한가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혼자라서 영화 선택에 무한한 자유가 있습니다.

언젠가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본다는 친구와 동행한 적이 있는데 친구가 재미없어 하니 제가 괜히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혼자라면 설사 선택한 영화가 별로라고 해도 온전히 나만의 일이므로 아무런 책임도 민망함도 느낄 필요가 없어서 편합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느끼는 소소한 재미, 공부 모임 선후배들과의 끈끈한 정, 가족들과의 화기애애한 시간 모두 나름의 맛과 즐거움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그 무엇을 혼자 놀기로 채우는 겁니다. 강의를 하면서 노년준비 항목에 꼭 넣는 것도 바로 혼자 놀기입니다.

같이 사는 배우자도, 둘도 없는 친구도 언젠가는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노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늘 누군가에게 시간과 관심을 구걸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서 하루의 일정한 시간 혹은 일주일의 어느 요일을 정해 혼자만의 시간으로 떼어 놓고 혼자 보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자꾸 연습하면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심심하다던 딸아이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나갔습니다. 집에는 오늘도 역시 저 혼자 남아 이렇게 혼자 놀고 있습니다.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