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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감주나무의 기도

모감주나무의 기도

by 운영자 2012.08.28

모감주는 뜨거운 여름에 성숙하는 나무다. 모감주나무는 배롱나무와 함께 여름에 꽃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나무면서도 꽃이 황금으로 만든 왕관을 담아서 매우 인기가 있다.

특히 비온 뒤에 모감주나무의 꽃을 보면 그 어떤 더위라도 식힐 만큼 황홀하다. 이처럼 모감주나무가 화려한 꽃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작렬하는 태양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모감주나무의 부모는 무환자나무다. 무환자나무는 ‘근심을 없애주는 열매’라는 뜻을 가진 데서 알 수 있듯이 사람에게 큰 위안을 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감주도 부모를 닮아서인지 꽃보다는 열매에 관심을 가지고 이름을 붙였다.

모감주라는 이름도 열매와 관련해서 붙였다. 모감주의 ‘주’는 구슬을 의미한다. 모감주나무의 열매는 불교의 염주를 만드는데 아주 유용할 뿐 아니라 고승들만 사용할 수 있었을 만큼 귀한 것이었다.

모감주의 꽃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열매도 꽃이 진 자리에 하늘을 향해 주렁주렁 맺힌다. 모감주나무의 열매는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반죽처럼 부풀어 오른다. 모감주나무가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하늘에 대한 간절한 기도다.

모감주나무의 간절한 기도는 꽃을 잘 피워서 충실한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사방으로 퍼져서 자손들이 번창하는 것이다.

한 존재가 간절히 기도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엄격해야만 한다. 모감주나무가 자신에게 얼마나 엄격한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떨어진 열매 안에 씨앗을 만져보는 것이다.

아주 부드러운 껍질 속에 들어 있는 3개 혹은 4개의 열매가 익으면 검게 변한다. 검게 변한 씨앗은 매우 단단하다. 모감주나무의 열매가 매우 단단한 것은 한 여름 폭염에도 잘 견디는 내성(耐性)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그토록 단단하게 만든 뒤에야 후손들이 잘 되길 바랄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구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자신의 삶이 치열할 때 기도는 스스로 성취할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의 모감주나무는 올 여름 치열하게 살았는지 벌써 씨앗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검게 변했다. 얼마 후면 껍질 속의 열매도 단단하게 변할 것이다. 올 가을에는 떨어진 열매를 주워서 염주라도 만들어봐야겠다.

염주를 만들어서 손으로 한 알 한 알 돌리면서 기도라도 해야겠다. 기도하면서 먼저 올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성찰한 뒤, 지난 세월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짚어봐야겠다. 역사에는 과거란 없다.

오로지 현재만 존재할 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역사를 지난날의 일로 치부하지만, 지난날의 일이 역사라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일 간의 독도문제는 참 부질없다.

모든 역사는 현재와 맞물려 있을 때만이 의미를 갖는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비켜가면서 미래를 얘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없다. 나무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

나무는 자신의 과거를 절대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는 몸속의 나이테로 자신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나이테가 나무의 역사이듯, 우리의 역사가 곧 현재의 우리모습이다.

강판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