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

by 운영자 2012.09.26

문 덕 근
전남교원단체총연합회장
순천이수초등학교장
교육학박사

원점이란 과거의 기점이자 새로운 미래의 출발점이다.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언제든지 미끄러질 수 있다. 오르다 미끄러진 바로 그곳은 종점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 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빨간 불일 때는 멈추고 파란 불일 때는 건너면 된다. 빨간 불일 때 건너려고 하면 어느 순간에 건너는 것이 안전한지? 혹시 카메라에 찍혀 벌금을 물지는 않을지? 마음을 졸여야 할 것이다.

모두 함께 정한 규칙은 모두가 지켜야 하고, 자신이 정한 규칙도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규칙 앞에서는 명석함도 요령도 필요 없다.

한문에 새롭다는 글자는 ‘新’인데, 서 있는(立) 나무(木) 옆에 도끼(斤)가 놓였다는 의미이다. 이는 도끼가 나무를 찍어버리겠다고 할 때 회개하면 나무는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도끼가 나무를 찍어 나무가 넘어진 상태가 아니라 나무 옆에 놓여 경고를 하고 있는 이유가 찍어서 새로워진 것보다는 게으른 타성을 청산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하여 열매를 맺으라는 뜻인 것이다.

모든 끝은 항상 새로운 시작을 잉태한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오는 끝에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시작을 맞는 사람에게 시간은 심판이 되지만, 내가 매듭을 짓고 내가 구획을 긋고 상징을 부여하며 사는 사람에게 시간은 새로운 기회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돈이 되는 말이 있고, 돈이 안 되는 말이 있다. 즉 성공을 부르는 말이 있고, 실패를 부르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돈이 되는 말은 ‘미안합니다(I am sorry)’라는 말이라고 한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어도 사과하느냐?’ 라는 질문에 수입이 높을수록 그렇다는 비율이 높았고,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사과한다는 것은 수입의 격차에 따라 그 비율의 격차도 더 크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미국의 워너메이커 백화점은 문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쪽의 문은 비전, 서쪽의 문은 감사, 남쪽의 문은 축제, 북쪽의 문은 사랑이라고 불리는데 각자 상품 진열의 특색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인생에도 4개의 문이 있다고 생각하자. 이 문을 항상 열어 두자. 우리에게 내일의 축복이 듬뿍 담겨오지 않을까?

오늘부터 전개되는 365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할 수도 있지만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희망에 산다는 것은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상처는 과거에 있고, 희망은 미래에 있다. Arnold Joseph Toynbee(1889. 4. 14. ~ 1975. 10. 22)도 ‘나는 과거의 역사보다 미래의 꿈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즉 과거보다 내일이 좋은 것이다.

희망에 산다는 것은 나와 이웃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노력과 덕이 다 어두워져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꿈이 없는 사람이다.

곧 2012년이 우리 앞을 반쯤 지나갔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학생들의 희망과 꿈을 가슴에 품고 걸어가야 한다.

사람은 언젠가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만 훈련에는 무수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모나 어른들로부터 받는 훈련의 기간은 인생에서 극히 일부분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훈련이다. 스스로의 꿈을 가장 명확하게 아는 사람도 자신이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자신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실현될 희망이 없는 일에서도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줄타기’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훈련을 거치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날마다 기적은 일어나며, 이 기적들은 자신의 특성을 지켜나가는 사람만이 일구어내는 것이다. 불가능이 없다고 믿는다면 불가능은 없는 것이다. 절망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영원한 것이다. 자! 희망과 꿈으로 새로운 시작에 도전하자. 도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