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자신을 때리는 자만이 남을 이길 수 있다

자신을 때리는 자만이 남을 이길 수 있다

by 운영자 2012.10.22

문 덕 근
전남교원단체총연합회장
순천이수초등학교장
교육학박사

플뢰르 뺄러랭(Fleur Pellerin, 38)은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으로 장관이 됐다는 뉴스가 한 동안 주요하게 다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자기를 때리는 자만이 남을 이길 수 있다.’는 그녀의 한 마디 말은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조기 입양된 자의 성공적인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한다. 마냥 순탄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고 또 어떤 때에는 너무나 괴로워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길 때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먼 거리를 달려가는 마라톤과 같다.

마라톤에서 끝까지 완주하려면 첫째, 목표를 분명히 정해야 한다. 둘째, 자기를 이겨야 한다. 셋째, 법을 지켜야 한다. 인생에서도 마라톤처럼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

인생에서 목표가 없이 달리는 것을 허사, 목표를 이탈하는 것을 탈선, 목표를 자주 바꾸는 것을 방황이라 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작은 목표는 무엇이고, 큰 목표는 무엇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지를 자주 물어야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목표 없는 삶을 나타내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인 박태보(朴泰輔, 1654년 ~ 1689년)에게는 쇠돌이라는 충실한 머슴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대감은 쇠돌이에게 벽란도에 좀 다녀와야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런데 아침 식사를 끝내고 보니 쇠돌이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도 쇠돌이는 보이지 않았다. 대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쇠돌이는 벽란도에 가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모르고 무작정 달려 갔던 것이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등 자신의 인생 목표에 대해 묻고 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스스로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論語 里仁 편,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는 것을 일컬음이다. 군자와 소인은 고대사회에서는 신분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지만, 도덕적인 사람과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에 대한 이름으로 전이되었다.

宋(송)나라 학자 陸象山(육상산)은 ‘사람의 밝은 것은 그 습관에 말미암고 습관은 뜻에 말미암는다. 義에 뜻을 두면 義에 밝아지고 利에 뜻을 두면 利에 밝아진다.’며 의지에 의해 습관이 생겨나고 습관에 의해 선택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의리와 이익이라는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그 한순간만 놓고 본다면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는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이후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선택하는 인간의 의지와 선택의 결과는 서로 순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국부 George Washington(1775~1883)은 그가 죽을 때 유언을 남기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웃음을 띠면서 ‘이것도 좋다.’라고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즉, 죽음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우연히 나온 말이 아니라 그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어떻게 승리했는가에 대한 최후의 결론인 것이다.

자신에게 명령할 줄 모르면 남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자신을 때리는 자는 남을 이길 수 있어도, 남을 때리는 자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