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상상나라‘ 상상대로 되려면

’상상나라‘ 상상대로 되려면

by 운영자 2012.10.26

세계 지도상에 없는 ‘나미나라공화국’을 다녀왔다. 청평호에 가랑잎처럼 떠 있는 남이섬의 새로운 이름이다. 호젓하게 둘러보려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남이섬 들머리는 차량행렬이 길게 꼬리를 물었다.

남이섬은 2006년 관광 활성화를 위해 ‘국가’를 표방하는 소형 공동체인 해외의 마이크로네이션을 도입해 통화, 국기, 우표, 문자 등 국가상징을 만들었다.

문자는 중국 윈난성 리장 나시족의 동파문이다. 법적 효력 없는 ‘상상’이지만 획기적인 발상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일반인 관람료는 10,000원. 경노우대는 70세 이상 8,000원으로 나미나라의 노인연령기준이 상향조정됐다.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매표소이고 여권은 입장권이다. 배 모양도 돔 형식으로 바뀌었고, 동남아 각국의 국기가 펄럭인다.

20여 년 만에 들린 남이섬은 세월만큼 많이 변했다. 예전엔 관리사무소의 매점과 강변의 방갈로, 강변가요제를 열었던 소형 무대, 족구장이 고작이었으나 나미나라국립호텔 ‘정관루’를 비롯하여 콘도별장 등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사랑마을’이라 이름 붙인 중심지엔 한식 중식 일식 이탈리아식 등 식당들이 즐비하여 상업성에 물든 게 아닌가 아쉬움도 든다.

상상과 예술의 문화관광지 ‘동화나라’를 표방하고 있지만 ‘겨울연가’ 첫 키스장소, 각국의 관광명소 사진과 만국기, 나미나라중앙은행 등 인위적인 조형물들이 거슬리는 것은 나이 탓인가 보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드라마 ‘겨울연가’로 한류열풍을 일으킨 명소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붉게 물든 단풍과 샛노란 은행잎, 하얀 몸매를 드러낸 자작나무와 강변 잣나무 숲길은 추억을 자맥질하며 가는 가을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지난해 남이섬을 찾은 관광객은 230만 명에 매출은 240억 원. 그 가운데 42만 명이 외국인이다. 10년 사이 관광객 수와 매출액을 10배 이상 늘린 성공신화의 주인공은 남이섬 CEO 강우현씨다.

디자이너인 그가 남이섬과 인연을 맺은 건 2001년. 교수 자리를 뿌리치고 대표를 맡았다. 월급은 100원, 대신 1년 동안 아무 간섭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어 화제가 됐다.

상상경영, 역발상 경영, 창조경영이 성공비결이다. 빈 소주병을 녹여 타일과 조명기구를 만들고, 폐목재는 목공예를 위해 사용 하는 등 남이섬의 쓰레기를 반출 없이 처리하는 것이 돋보이고, 종신직원제 도입도 신선하다. ‘겨울연가’ 이후를 위해 ‘겨울연가’를 버려야 한다는 역발상이 꿈꾸는 나라, ‘나미나라공화국’ 독립선언의 계기가 됐다.

나미나라공화국의 관광콘텐츠 도입을 위해 9개 지자체가 동참한 ‘상상나라 국가연합(UNi ; United Nations of Imagnation)’이 지난 달 출범했다.

인천 서구의 ‘역발상 공화국’ 경기도 양평군의 ‘쉬쉬놀놀 공화국’, 경북 청송군의 ‘장난끼 공화국’ 등 지역이 추구하는 축제를 접목시켜 이름 붙였다.

상상나라 국가연합이 상상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콘텐츠에 상상의 자율을 불어넣어야 한다. 규정을 지켜야하고 감사에 대비해야하는 공무원들이 시행착오를 감수하고 상상나라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