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뜨개질 삼매경
모녀의 뜨개질 삼매경
by 운영자 2012.12.19
올 겨울 뜨개질을 시작한 것은 목하 열애 중인 큰딸이었습니다.
누가 연애 중 아니랄까봐 남자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도리를 떠주겠다며, 털실을 사고 뜨개질 방법을 배워 와서는 떴다 풀었다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
어느 세월에 완성되는 거냐, 그러다 올해 안에 선물할 수 있겠냐, 추위 다 지나가겠다는 식구들의 놀림에도 아랑곳없이 꿋꿋이 버티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합니다.
슬그머니 이십대 때의 제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연말에 접어들면서 약속했던 강의 일정들이 얼추 마무리되니 마음이 느긋해지면서 뜨개질하는 아이에게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나도 뭐 좀 떠볼까?’하는 마음이 불쑥 솟으면서, 지난 해 아이들이 구입해 놓고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생각이 났습니다.
부랴부랴 서랍을 뒤져 완성하지 못한 모자를 찾아냈습니다.
어미인 제가 무언가를 시작해놓고 제대로 마무리를 못하니 아이들 탓할 것도 없다는 반성을 하면서 털실을 다시 풀어 감고 코를 새로 잡아 모자 뜨기에 돌입했습니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영유아를 살리기 위해 후원자가 모자를 직접 떠서 보내주는 캠페인입니다.
이 일을 주관하는 단체의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 200만 명의 아기들이 자신이 태어난 날 사망하고, 400만 명의 신생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이 아기들에게 저체온증을 막아줄 작은 털모자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입니다.
없는 솜씨에 오랜만에 바늘을 잡았으니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코를 빠뜨리기 일쑤이고 지나치게 느슨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쫀쫀해서 울퉁불퉁 엉성합니다. 그래도 집중해서 뜨개질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복잡한 머릿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노안으로 돋보기를 써야 하니 눈이 금세 침침해지고 어깨도 뻐근하지만, 한 줄 한 줄 늘어나는 재미에 밤늦게까지 딸 옆에 앉아 있다 보니 모처럼 모녀간에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비록 아이들이 시작해 아이들이 완성하지 못한 것이지만, 다 큰 아이들의 이런 행동에는 분명 어미의 책임도 있어 부끄러운 마음에 열심히 매달렸더니 이제 거의 끝이 보입니다.
미완성인 채로 버리지 않고 다시 거둬 새롭게 뜨개질하는 것을 보며 아이들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다행이겠지요. 나중에 이 모자가 어느 나라 아기에게 전해질지 모르고, 영원히 그 아기의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엄마 옆에서 같이 뜨다보니 속도가 붙었는지 큰딸의 남자친구 선물용 목도리도 제법 길이가 늘어났습니다. 무릎 맞대고 앉아 뜨개질하는 모녀의 훈훈한 겨울밤이 깊어갑니다.
<유경작가>
누가 연애 중 아니랄까봐 남자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도리를 떠주겠다며, 털실을 사고 뜨개질 방법을 배워 와서는 떴다 풀었다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
어느 세월에 완성되는 거냐, 그러다 올해 안에 선물할 수 있겠냐, 추위 다 지나가겠다는 식구들의 놀림에도 아랑곳없이 꿋꿋이 버티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합니다.
슬그머니 이십대 때의 제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연말에 접어들면서 약속했던 강의 일정들이 얼추 마무리되니 마음이 느긋해지면서 뜨개질하는 아이에게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나도 뭐 좀 떠볼까?’하는 마음이 불쑥 솟으면서, 지난 해 아이들이 구입해 놓고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생각이 났습니다.
부랴부랴 서랍을 뒤져 완성하지 못한 모자를 찾아냈습니다.
어미인 제가 무언가를 시작해놓고 제대로 마무리를 못하니 아이들 탓할 것도 없다는 반성을 하면서 털실을 다시 풀어 감고 코를 새로 잡아 모자 뜨기에 돌입했습니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영유아를 살리기 위해 후원자가 모자를 직접 떠서 보내주는 캠페인입니다.
이 일을 주관하는 단체의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 200만 명의 아기들이 자신이 태어난 날 사망하고, 400만 명의 신생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이 아기들에게 저체온증을 막아줄 작은 털모자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입니다.
없는 솜씨에 오랜만에 바늘을 잡았으니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코를 빠뜨리기 일쑤이고 지나치게 느슨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쫀쫀해서 울퉁불퉁 엉성합니다. 그래도 집중해서 뜨개질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복잡한 머릿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노안으로 돋보기를 써야 하니 눈이 금세 침침해지고 어깨도 뻐근하지만, 한 줄 한 줄 늘어나는 재미에 밤늦게까지 딸 옆에 앉아 있다 보니 모처럼 모녀간에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비록 아이들이 시작해 아이들이 완성하지 못한 것이지만, 다 큰 아이들의 이런 행동에는 분명 어미의 책임도 있어 부끄러운 마음에 열심히 매달렸더니 이제 거의 끝이 보입니다.
미완성인 채로 버리지 않고 다시 거둬 새롭게 뜨개질하는 것을 보며 아이들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다행이겠지요. 나중에 이 모자가 어느 나라 아기에게 전해질지 모르고, 영원히 그 아기의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엄마 옆에서 같이 뜨다보니 속도가 붙었는지 큰딸의 남자친구 선물용 목도리도 제법 길이가 늘어났습니다. 무릎 맞대고 앉아 뜨개질하는 모녀의 훈훈한 겨울밤이 깊어갑니다.
<유경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