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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과 봄소식

서향과 봄소식

by 운영자 2013.02.13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변화가 아니다. 시간의 변화로 생명체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봄이고 계절의 변화이다.

추운 겨울인데도 베란다의 서향, 즉 천리향은 꽃을 피웠다. 서향(瑞香)은 이 나무의 꽃이 상서로운 향기를 뿜어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지만, 어떤 나무인들 꽃의 향기가 상서롭지 않을까.

그런데도 유독 이 나무에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은 대부분의 나무들은 아직 꽃을 피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추운 날씨에도 진한 향기를 뿜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추운 날씨에 꽃을 피우든, 더운 날씨에 꽃을 피우든 그 가치는 다르지 않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한 존재의 가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서향을 ‘천리향’이라 부르는 것은 꽃의 향기가 천리까지 간다는 뜻이다. 물론 서향의 꽃향기가 천리까지 갈수는 없지만, 굳이 천리라 표현한 것은 그 만큼 멀리 간다는 뜻이다.

나무가 진한 꽃향기를 만드는 것은 벌이나 나비 등 동물을 불러들여 후손을 남기려는 고도의 전략이지만, 베란다의 서향은 그런 고도의 전략도 무용지물이다.

서향이 꽃을 피우는 동안 벌과 나비가 찾아들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매년 배란다의 서향이 꽃을 피울 때마다 진한 향기에 감동하지만, 후손을 남길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무겁다.

베란다의 서향처럼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평생을 보내는 식물이 적지 않다. 이는 인간이 식물을 자신이 사는 곳으로 들이면서 생긴 현상이지만, 인간 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식물의 삶도 시대에 따라 상당히 큰 변화를 겪는다.

각국마다 식물에 대한 인식이 다르지만, 인간 삶의 변화가 식물에 대한 인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으로 인간은 식물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물론 중세사회의 지배층들도 식물을 독점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으로 식물의 독점은 국경을 넘어 이루어졌다. 베란다에 식물을 들이는 것도 일종의 식물에 대한 독점 현상이다.

나를 포함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베란다에 식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 사람들은 식물의 독점을 통해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해소한다.

한 생명체의 행복은 대부분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내가 서향의 꽃향기에서 행복을 얻는다면, 서향은 도대체 누구의 희생을 통해 행복을 얻을까.

서향은 내가 바라보는 것으로 행복할까. 만약 서향이 내가 바라보는 것으로 행복하지 못하면 다른 무엇으로 행복할까. 서향은 바람을 맞으면서 행복할까.

내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행복하다면, 나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행복은 한층 오래 지속될 것이다. 행복이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겸손한 자세로 살아갈 수 있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야만 한층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