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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녹듯

봄눈 녹듯

by 운영자 2013.02.27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흔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설국이라도 된 듯이 겨우 내내 눈 덮인 풍경이 이어졌습니다

깊은 겨울 산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주변 곳곳에서도 눈을 볼 수 없었던 날은 거반 없었지 싶습니다.

눈이 녹을라치면 또다시 눈이 내려 사라질 것 같았던 눈 세상을 만들고는 했으니까요. 때마다 기록을 경신하듯이 올 들어 최고의 적설량을 보였다는 말도 여러 번 들어야 했습니다.

덕분에 눈을 치우는 일은 겨우내 일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싫도록 눈을 치워야 했습니다.

눈을 치우는 시간이 조금만 늦으면 길은 온통 빙판길로 변하고, 그렇게 되면 사람도 차도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이 되어야 했으니 눈이 내린다 싶으면 마음은 긴장이 되었고 몸은 분주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에서 눈이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제설차량입니다. 도로의 눈을 녹인다며 얼마일지 모르는 양의 염화칼슘을 뿌려대곤 합니다.

물론 오가는 자동차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나중 그 물이 흘러갈 강가의 고기들이나 바다의 동물들에겐 치명적인 위험이 되지 않을까요?

지나치게 인간 위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당장의 일에만 마음을 두는 것 같아 걱정이 들곤 합니다. 그나저나 눈이 흔했던 겨우 내내 깊은 산 중에는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부러졌을까요?

한여름의 거센 폭풍을 견딘 나무들이 고요히 쌓이는 눈을 견기지 못하고 뚝 뚝 부러지곤 합니다. 산 중에 들어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는 것은 드물게 만나는 신비로운 일입니다.

부드러움이 거침을 이기는 것임을 겨울나무는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어김없이 시간이 가면서 어느새 ‘입춘’과 ‘우수’가 지났습니다. 노루꼬리만큼씩 해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싫도록 눈과 어울렸던 겨울을 보내며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겨우내 눈 치우느라 애를 썼지만, 따뜻한 볕 한 번 내리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빗자루와 넉가래와 삽으로 아무리 많은 눈을 치웠다 하여도 따뜻한 봄볕이 지워내는 눈의 양과는 비교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눈길과 마음, 우리 삶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싶습니다.

봄눈 녹듯 녹는 것,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