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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와 능소화의 동거

회화나무와 능소화의 동거

by 운영자 2013.07.03

회화나무 꽃이 필 계절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한나라의 수도 장안의 가로수였던 회화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내가 사는 곳의 가로수 중에도 회화나무 가로수를 쉽게 볼 수 있다. 회회나무 가로수는 아주 아름답다.

특히 서원이나 유교 관련 유적지의 회화나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얼마 전 나무 공부하는 분들과 영남의 대표적인 양반촌으로 불리는 경북 성주군의 한개마을에서도 회화나무를 보았다.

양반마을에서 회화나무를 반드시 만나는 것은 이 나무가 ‘학자수(學者樹)’이기 때문이다.

모든 나무가 선비의 기상을 갖고 있지만, 옛 사람들은 회화나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자유롭게 뻗는 회회나무의 가지는 자유를 생명수처럼 여기는 선비들의 기상을 닮았다.

더욱이 회화나무를 선비에 비유한 것은 중국 주나라 때 사(士)의 무덤에 이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척 안타깝게도 옛날 천 원짜리 지폐 뒷면에 등장하는 경상북도 안동 도산서원의 회화나무는 현재 죽었다. 썩은 몸통만 남은 채 서 있는 회화나무에는 능소화가 기생하고 있다.

능소화(凌宵花)는 성리학자들이 무척 좋아한 덩굴성 나무이다. 능소화의 학명에는 ‘능소’의 의미는 없다.

그런데도 중국이나 한국에서 이런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이 나무가 가진 매력 때문일 것이다. 양반들은 능소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상놈들이 마당에 심는 것조차 금지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양반꽃’이라 부른다. 아름다움을 나누지 않고 독점하려는 양반들의 일그러진 애욕(愛慾)은 비난받아야 하지만, 이는 그 만큼 능소화가 아름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도산서원의 회화나무는 죽었지만 그 자리에 다시 회화나무를 심을 필요가 있다. 나무는 언젠가 죽는다. 그래서 도산서원의 회화나무도 500년을 살다가 죽었다.

나무가 죽으면 그 자리에 같은 나무를 심어야 나무를 심은 정신도 살아난다.

도산서원의 회화나무는 퇴계와 그의 후계자들의 정신, 나아가 조선 성리학의 정신이었다. 도산서원의 회화나무를 죽은 채 두고 있는 것은 후손들이 퇴계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도산서원의 회화나무를 다시 심을 경우 죽은 회화나무를 없애서는 안 된다.

죽은 회화나무는 아직도 서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기 때문이다.

도산서원에 회화나무를 다시 심는 것은 우리의 희망을 심는 것과 같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 몸에 남아 있는 성리학의 디지털화이다.

성리학의 디지털화는 곧 전통의 디지털화이고, 전통의 디지털화는 곧 우리의 희망이자 인류의 미래이다. 나는 성리학의 디지털화에 남은 인생을 걸고 싶다.

왜냐하면 한국의 전통 중 성리학과 불교가 핵심이고, 핵심 전통을 제대로 계승하는 일이야말로 한국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리학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한국과 중국 등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한 전통적 가치가 아니라 세계인의 가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리학의 가치를 원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시대에 맞게 디자인하는 게 절실하다. 이제 한국 전통의 세계화 작업에 성리학의 가치를 중시해야 할 시점이다.

<강판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