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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상전?

손톱이 상전?

by 운영자 2013.07.04

큰딸아이를 따라 ‘네일 아트(Nail Art)’라고 쓰인 간판 아래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가게 선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색색 매니큐어 병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았다며 한 턱 쏘겠다는 아이의 청을 뿌리칠 수 없어 따라나서긴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손톱 정리와 매니큐어 칠을 맡긴다는 것이 영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거친 손톱을 가지런히 다듬고 나서 매니큐어만 바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니큐어 바르기 전에도 무언가 보호제라고 칠하더니, 매니큐어가 다 마른 다음에도 잘 벗겨지지 않게 하고 윤기 나게 해준다는 것을 또 발랐습니다.

가뜩이나 볼품없이 짧은 손가락에 어느 새 굵어진 마디, 거기다가 손톱이 조금만 길어도 견디지 못하니 손톱은 짤막하고 관리라고는 모르니 피부 또한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딸아이의 가늘고 고운 손가락은 제법 모양이 났지만, 제 손은 손톱만 화려한 옷을 입었을 뿐 영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엄마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려는 딸의 마음과 색깔 예쁜 손톱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심해서 사용하면 2주일 정도는 간다는 이야기에 바야흐로 ‘손톱 모시기’가 시작됐습니다.

고무장갑 없이 쓱쓱 해치우던 일도 꼭 고무장갑을 찾아 끼고, 어디에 긁히거나 부딪치지 않게 신경을 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예쁜 손톱을 얻은 대신 자유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을 했건만 이틀째부터 매니큐어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살림을 하면서 수시로 물에 손을 넣어야 하고 이리 저리 부딪히게 되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들인 돈이 아까워 참고 참다가 결국은 닷새 만에 다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톱이 이제야 맘껏 숨을 쉬는 것 같고, 손도 비로소 자유를 얻은 듯합니다.

며칠 후, 해마다 봄이면 딸과 손녀들을 위해 아파트 1층 마당에 봉숭아를 심으시는 친정어머니께서 올해는 꽃이 일찍 피었다면서 봉숭아꽃과 이파리, 백반을 넣어 골고루 다진 것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꽁꽁 싸매고 하룻밤 자고 나니 손톱 끝에 봉숭아꽃물이 예쁘게 들었습니다. 봉숭아물 든 손톱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고, 어디에 부딪칠까봐 모시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이 자유를 맘껏 누리며 예쁜 봉숭아꽃물 든 손톱과 함께 저의 여름이 무르익어 갑니다.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