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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두 병원 응급실

1박 2일 두 병원 응급실

by 운영자 2013.07.05

아프지 말아야 한다. 아프고 싶어 아픈 사람 없지만 일요일엔 절대 아파선 안 된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이 평일보다 몇 배 힘들다.

지난 일요일, 교회 갈 채비를 하던 아내가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면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최근 며칠 과로한 탓이려니 여기고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정신 줄을 놓는다. 당직 의사가 CT 촬영과 심전도 검사, 채혈 등 응급 진료를 한다.

병원 입장에선 응급 진료지만 보호자 입장에선 느림보 진료다. 당직의사는 ‘중풍 가능성’을 내비치며 확실한 것은 월요일 MRI를 찍어 봐야 안다는 대답이다.

“환자가 혼수상태이니 응급처치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자, “상당 기간 그럴 수 있다”는 말뿐이다. 의사가 없는 사이 간호사는 “혼수(昏睡)가 아니라 기면(嗜眠)상태”라고 귀띔해 준다.

혼수든 기면이든 환자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중환자실 입원수속을 밟으란다. 7시간 경과 뒤 의식은 돌아왔으나 비몽사몽 헛소리까지 한다.

월요일 아침, 회진을 도는 전문의와 만나 결과를 물었다. MRI와 신장검사 등 추가 검사를 해봐야 안다는 대답이다. 환자가 밀려 MRI도 오후에나 시간이 잡히고 결과도 빨라야 24시간 뒤에 나온다고 해 황당하다.

평소 진료받던 대학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소견서, 진료의뢰서와 함께 CT 촬영 등 진료 결과를 CD에 담아 준다.

병원 앞에 대기 중인 사설응급차량을 이용하여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현금을 요구하며 영수증 처리도 안 한다.

마음은 급하고 따질 겨를이 없어 그냥 넘겼다. 대학병원 응급실도 북새통이다. 도착하자마자 MRI부터 촬영하여 마음이 한결 놓이지만 심전도와 채혈 등 종합병원에서 한 기초검사를 다시 한다.

“가지고 온 검사자료에 담겨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우리 병원에도 기초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것. 환자도 이중 부담이지만 건강보험료가 줄줄 새는 요인이다.

간호사와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몇 번 확인했다. 채혈 결과가 나와야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데 워낙 조급해하니까 미리 알려 준다며 “MRI 검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검사가 마무리된 뒤에도 곧 내려온다는 담당 의사를 한 참 기다린 뒤 만났다.

“이상 없으니 퇴원하세요” 한다. 이상이 없다니 반갑긴 한데 증세엔 원인이 있는 게 아닌가. 원인을 모르니 답답하다.

1박 2일 두 병원의 응급실 진료에 심신이 지쳤다. 충격의 여진은 며칠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다.

“병치레 없이 살다가 자는 듯이 죽고 싶다”는 게 노인들의 바람이다.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평균 80세이지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이는 70세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10년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숨을 거둔다는 얘기다. 병치레 없이 살다 죽는 것도 행복이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