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아이들의 멘토가 돼 주세요

아이들의 멘토가 돼 주세요

by 운영자 2013.07.09

“가족원들 중 가장 좋은 직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진 후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보인다.

가족원 한사람 한사람을 떠올리며 누가 더 나은 직업일까를 고민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아이들은 난감해 하고 있었다. 직업이 없는 가족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굳은 표정 속에 담긴 그늘이 보여 질문을 철회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하기 위한 질문이었기에 그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는 지켜보기로 하고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입니다. 학생. 저희 가족 중에서는 제가 가장 좋은 직업인데요.”

첫 번째 아이가 어렵게 꺼내놓은 재치(?)있는 대답으로 난감한 질문에 대한 숨통이 트여진다.

두 번째, 세 번째… 십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 같은 대답을 하며 자칫 감추고 싶은 가족사를 드러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을 넘겨가고 있다.

조금 전 직업명 빙고게임을 하며 신나하던 모습은 어디로들 갔는지 하나같이 풀이 죽은 모습이다. 가족들 이야기만 나오면 죄인 마냥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아가는 조손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집단 상담의 한 장면이다.

내가 맡은 ‘하고 싶은 일, 비전을 이루는 방법’을 진행하기 전 실시된 조사에서 장래희망으로 사회복지사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는 귀띔을 받았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첫해 각종 기관으로부터 이어지는 설문조사 실시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장래희망에 사회복지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 뿌듯했던 시절도 있었다. 해마다 이어지는 설문과 실태조사에서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장래희망란의 응답률이 떨어지고 모르겠다와 없음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응답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유년기에 소방관과 경찰을 꿈꾸고 초등시절 교사를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 일 듯한, 복지서비스를 받는 아이들에게 이어지는 사회복지사라는 장래희망은 이 일을 하고 있는 내게 이제는 뿌듯함 대신 또 다른 씁쓸함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일조차 자신의 삶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아이들.

그중의 몇몇은 지나온 삶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영향력을 보여준 이들이 사회복지사였을 뿐이었던 것은 아닐지, 또 몇몇은 익명으로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분명 자신의 대답임을 인지하고 있을 사회복지사들에게 보여주는 모범답안적 응답이었던 것은 아닐지.

아이들에게 다시 물었다. 함께하는 가족들은 너희가 무엇이 되길 바라는지?

판사, 교사. 두어 명의 아이를 제외하고는 그냥 하고 싶은 것 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너희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계시는지, 그 일을 이루기 위해 가족원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묻는 질문에 다시 고개가 숙여진다.

부족하고 미약한 아동기를 보내며 바람직한 발달을 이루기 위해 성인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그것을 이루지 못함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무력감에 빠져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아이들이 그토록 긍정적으로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는 사회복지사조차도 그 일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을 데리고 집단 상담을 진행하며, 아이들을 알아가면서도 그들의 욕구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집단상담이라는 실적만을 남긴 채 국가와 중앙단체의 또 다른 실적 요구를 채우기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수백 명의 아이들을 찾아 수박 겉을 핥기 위해 떠나야 하는 현실에 담당사회복지사의 긴 한숨이 이어진다.

“아이들을 알아갈수록 할 수 있는 것보다 해줄 수 없는 것이 많은 현실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아이들에게 가족원과 함께 의논할 수 없다면 학교 선생님, 사회복지사, 동네 형, 누나들 중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의논해보길 당부하며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는 발길의 무거움을 여러분을 향한 호소로 달래보려 한다.
“내 주변 어디엔가 있을 이 아이들의 건전한 발달을 돕는 멘토가 되어주세요.

인내와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아이가 가진 장점이 드러날 수 있도록!”

<유순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남지역본부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