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를 나는 지혜
삼복더위를 나는 지혜
by 운영자 2013.07.12
옥상의 화분 몇 개가 ‘하늘정원’ 구실을 톡톡히 한다.
화분에 물을 줄 때는 푸근하고 넉넉해진다. 햇살이 이글거릴 때는 하루만 걸러도 고춧잎은 어께를 늘어뜨린다.
해마다 시골 조카가 보내주는 고추모종을 이웃에 나눠 주고 열 네 포기 심었다. 싱싱한 풋고추가 식탁을 푸르게 한다.
커다란 화분에 한 포기 심은 오이는 아침저녁 다르게 몸집을 쑥쑥 불린다. 콧대 높은 ‘천사의 나팔꽃(엔젤 트럼펫)’과 잎이 넓은 화초가지, 채송화와 분꽃은 물을 많이 켜는 체질이다.
올 봄에 새로 사 온 철쭉을 비롯하여 영산홍과 머루넝쿨, 오가피, 라일락은 하루걸러 물을 줘도 제 몸의 수분으로 푸름을 잃지 않는다.
장맛비가 그친 오후 차양 망을 드리운 옥상 평상에 대나무 베개를 베고 한여름의 망중한을 즐긴다.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따라 마음은 어렸을 적 고향으로 달려간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 누워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꿈을 꾸었다.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펼치는 구름의 춤사위는 다채롭고 눈이 시리다.
구름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듯 소년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싶었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발아래 펼쳐진 구름밭은 마치 목화송이를 풀어놓은 듯 부드러웠다.
지중해 붉은 낙조에 꽃빛으로 물든 구름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취해 눈시울을 붉히던 기억도 새롭다.
자지러질듯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청량하고, 구성진 뻐꾸기소리에 애잔함이 스며든다. 감나무 잎 사이로 살랑살랑 스쳐가는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기차가 시골의 정적을 흔들고 지나가면 마음은 열차가 되어 레일 위를 달린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 사람을 만나고 취재여행을 떠나는 것이 직업이 됐다.
인간의 숲에서 희망을 보았고, 새로운 세상에 눈뜨며 긴 세월 쉼 없이 달려왔다.
세월 참 빠르다. 올해도 어느새 반환점을 돌아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초복이다.
복날에는 벼도 한 살씩 먹는다고 한다. 벼는 하나의 줄기에 마디가 세 개다.
복날마다 하나씩 생겨 세 마디가 되면 이삭이 핀다. 꽃이 세 번 피고 져야 벼가 익는다는 배롱나무(목 백일홍)도 붉은 꽃술을 터트렸다.
이맘때면 모내기 끝 낸 농촌의 일손도 조금은 한가해진다. 아이들은 어레미와 반두를 들고 도랑을 뒤졌고 깊은 물에 사발무지를 놓았다.
어른들은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끊여 술추렴으로 천렵(川獵)을 즐겼으나 이제는 풍속화 속의 풍경이 됐다.
전통 천렵 풍속을 재현하는 행사가 낙동강 본류가 시작되는 안동 반변천 여울에서 해마다 열린다.
‘낙동강 모래여울의 왕자’로 불리는 누치를 명주그물 후리기로 잡는다.
강변에 대형 가마솥을 걸어두고 갓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나눠먹으며 천렵의 추억을 되새긴다.
복달임은 힘겨운 노동으로 쇠약해진 기력을 보충하는 의미가 있다. 매운탕 대신 삼계탕과 닭백숙, 보신탕이 복날 보양식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한 여름은 느릿느릿 흐른다. 흘러가는 구름을 무심히 바라보며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삼복더위를 나는 지혜다.
<이규섭 시인>
화분에 물을 줄 때는 푸근하고 넉넉해진다. 햇살이 이글거릴 때는 하루만 걸러도 고춧잎은 어께를 늘어뜨린다.
해마다 시골 조카가 보내주는 고추모종을 이웃에 나눠 주고 열 네 포기 심었다. 싱싱한 풋고추가 식탁을 푸르게 한다.
커다란 화분에 한 포기 심은 오이는 아침저녁 다르게 몸집을 쑥쑥 불린다. 콧대 높은 ‘천사의 나팔꽃(엔젤 트럼펫)’과 잎이 넓은 화초가지, 채송화와 분꽃은 물을 많이 켜는 체질이다.
올 봄에 새로 사 온 철쭉을 비롯하여 영산홍과 머루넝쿨, 오가피, 라일락은 하루걸러 물을 줘도 제 몸의 수분으로 푸름을 잃지 않는다.
장맛비가 그친 오후 차양 망을 드리운 옥상 평상에 대나무 베개를 베고 한여름의 망중한을 즐긴다.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따라 마음은 어렸을 적 고향으로 달려간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 누워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꿈을 꾸었다.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펼치는 구름의 춤사위는 다채롭고 눈이 시리다.
구름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듯 소년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싶었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발아래 펼쳐진 구름밭은 마치 목화송이를 풀어놓은 듯 부드러웠다.
지중해 붉은 낙조에 꽃빛으로 물든 구름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취해 눈시울을 붉히던 기억도 새롭다.
자지러질듯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청량하고, 구성진 뻐꾸기소리에 애잔함이 스며든다. 감나무 잎 사이로 살랑살랑 스쳐가는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기차가 시골의 정적을 흔들고 지나가면 마음은 열차가 되어 레일 위를 달린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 사람을 만나고 취재여행을 떠나는 것이 직업이 됐다.
인간의 숲에서 희망을 보았고, 새로운 세상에 눈뜨며 긴 세월 쉼 없이 달려왔다.
세월 참 빠르다. 올해도 어느새 반환점을 돌아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초복이다.
복날에는 벼도 한 살씩 먹는다고 한다. 벼는 하나의 줄기에 마디가 세 개다.
복날마다 하나씩 생겨 세 마디가 되면 이삭이 핀다. 꽃이 세 번 피고 져야 벼가 익는다는 배롱나무(목 백일홍)도 붉은 꽃술을 터트렸다.
이맘때면 모내기 끝 낸 농촌의 일손도 조금은 한가해진다. 아이들은 어레미와 반두를 들고 도랑을 뒤졌고 깊은 물에 사발무지를 놓았다.
어른들은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끊여 술추렴으로 천렵(川獵)을 즐겼으나 이제는 풍속화 속의 풍경이 됐다.
전통 천렵 풍속을 재현하는 행사가 낙동강 본류가 시작되는 안동 반변천 여울에서 해마다 열린다.
‘낙동강 모래여울의 왕자’로 불리는 누치를 명주그물 후리기로 잡는다.
강변에 대형 가마솥을 걸어두고 갓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나눠먹으며 천렵의 추억을 되새긴다.
복달임은 힘겨운 노동으로 쇠약해진 기력을 보충하는 의미가 있다. 매운탕 대신 삼계탕과 닭백숙, 보신탕이 복날 보양식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한 여름은 느릿느릿 흐른다. 흘러가는 구름을 무심히 바라보며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삼복더위를 나는 지혜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