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고발
by 운영자 2013.07.22
고발 갈등은 삶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량이다.
갈등은 콩과의 칡과 등에서 빌린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등나무 아래서 해결한다.
갈등은 칡이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반면,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인간은 두 생명체가 서로 엉켜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갈등은 인간이 살고 있는 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을 미연에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만큼 발생 후 해결하는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아주 낮다.
갈등을 해결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갈등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에서 난무하는 고발은 갈등의 정점을 보여준다.
갈등의 원인은 아주 다양하지만 생명체에 대한 오해도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다. 내가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생명체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중 하나는 ‘식물인간’ 혹은 ‘식물국회’에서 보듯, 식물을 죽은 존재로 파악하는 인식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을 검색하면 식물국회, 식물인간이라는 용어를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신문사에서 양산하는 이러한 식물에 대한 오해가 갈등을 조장하거나 증폭시킨다.
그러나 신문사들은 자신들이 갈등을 양산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사회의 갈등에 대해 비판하거나 대안을 제시한다.
식물은 인간보다 위대한 존재인데도 죽은 존재로 파악하는 것은 식물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다. 식물에 대한 이러한 모독은 고대 중국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오랑캐로 파악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에 대해 일부 미국의 네티즌이 아시아인들을 모독한 것도 인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생명체에 대한 오해는 경우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심할 경우에는 전쟁도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 식물을 모독한 사람과 신문사를 고발하려고 자료를 준비했다.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식물을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 바라보지 않는 한, 한국사회는 절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
생명을 경시하는 국가는 절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을 둘러싼 식물과 동물의 생명체에 대해서 각별한 인식을 갖지 않고서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인권만큼 ‘식권(植權)’도 중요하다. 그런데 간혹 식물을 인간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식물을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식물 자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결국 인간을 위한 인식의 전환이지 식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식물에 대해 각별히 관심을 갖는 것도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서이다. 더욱이 혼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나의 일이 다른 사람의 일과 일치시키는 일이 지도자의 몫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도자들 중에는 자신의 일만 챙기는 소인배가 적지 않다.
소인배들이 설치는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다. 시끄러운 세상을 치유할 지도자는 누구일까. 지금은 바로 국민뿐이다. 국민이 지도자들에게 기대는 순간 갈등은 해결할 수 없다. 치유능력을 상실한 국민은 불행할 뿐이다.
<강판권 교수>
갈등은 콩과의 칡과 등에서 빌린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등나무 아래서 해결한다.
갈등은 칡이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반면,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인간은 두 생명체가 서로 엉켜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갈등은 인간이 살고 있는 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을 미연에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만큼 발생 후 해결하는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아주 낮다.
갈등을 해결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갈등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에서 난무하는 고발은 갈등의 정점을 보여준다.
갈등의 원인은 아주 다양하지만 생명체에 대한 오해도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다. 내가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생명체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중 하나는 ‘식물인간’ 혹은 ‘식물국회’에서 보듯, 식물을 죽은 존재로 파악하는 인식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을 검색하면 식물국회, 식물인간이라는 용어를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신문사에서 양산하는 이러한 식물에 대한 오해가 갈등을 조장하거나 증폭시킨다.
그러나 신문사들은 자신들이 갈등을 양산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사회의 갈등에 대해 비판하거나 대안을 제시한다.
식물은 인간보다 위대한 존재인데도 죽은 존재로 파악하는 것은 식물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다. 식물에 대한 이러한 모독은 고대 중국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오랑캐로 파악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에 대해 일부 미국의 네티즌이 아시아인들을 모독한 것도 인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생명체에 대한 오해는 경우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심할 경우에는 전쟁도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 식물을 모독한 사람과 신문사를 고발하려고 자료를 준비했다.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식물을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 바라보지 않는 한, 한국사회는 절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
생명을 경시하는 국가는 절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을 둘러싼 식물과 동물의 생명체에 대해서 각별한 인식을 갖지 않고서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인권만큼 ‘식권(植權)’도 중요하다. 그런데 간혹 식물을 인간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식물을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식물 자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결국 인간을 위한 인식의 전환이지 식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식물에 대해 각별히 관심을 갖는 것도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서이다. 더욱이 혼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나의 일이 다른 사람의 일과 일치시키는 일이 지도자의 몫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도자들 중에는 자신의 일만 챙기는 소인배가 적지 않다.
소인배들이 설치는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다. 시끄러운 세상을 치유할 지도자는 누구일까. 지금은 바로 국민뿐이다. 국민이 지도자들에게 기대는 순간 갈등은 해결할 수 없다. 치유능력을 상실한 국민은 불행할 뿐이다.
<강판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