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반란을 도모해야 할 때

반란을 도모해야 할 때

by 운영자 2013.07.29

사람들은 오늘날의 문명을 승자독식의 물질문명이라고 비판하고 때론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한탄한다.

그러면서도 “묻지 마 일등”을 차지하려는 이전투구에 기어이 끼어들고 있다.

수단과 방법 가릴 것 없이 승자가 되기만 한다면 독식의 쾌락을 누리지만, 패자가 된다면 비참함을 겪어야하기에 무한경쟁에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다.

사람들은 무자비한 경쟁을 서글퍼하면서도 “어차피 먹고 먹히는 세상”이라고 체념하며 적자생존의 논리를 신화처럼 받들고 있다.

과연 다윈식의 적자생존은 불변의 진리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문제는 우리가 적응해야 할 환경이 어떤 것이냐의 문제를 간과하고 적합성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환경은 탐욕의 독성으로 오염 된 지 오래다. 만일 적자생존만을 강조한다면 탐욕의 독성에 더 빨리, 더 많이 오염되어야 환경에 적합하게 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결국 탐욕에 오염된 환경에 적응하기 유리한 자들은 어떤 인간들일까? 독성으로 오염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명체는 독버섯이다.

과연 탐욕의 독성으로 오염된 세상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탐욕의 독성에 오염된 물질문명에 가장 잘 적응하는 인간은 사이코패스이다.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흉악무도한 범죄자로만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비록 범죄는 저지르지 않지만, 자신의 탐욕과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기만하고 해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냉혈한 인간 역시 사이코패스이다.

다만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블랙 사이코패스”와 구별하여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라고 부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양심이 마비된 사이코패스가 되어야 돈과 명예,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탐욕을 채우는 양심 없는 사람이 승자가 되고 결국 모든 것을 차지한다.

심지어는 거짓말과 속임수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사이코패스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우대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이야기할 때 동물의 세계를 예로 든다. 그것은 동물의 세계를 모독하는 것이다.

먹이사슬의 흐름에 따라 호랑이는 사슴을 잡아먹지만 같은 호랑이를 잡아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같은 사람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 지금 인간사회는 정글보다 더 잔인하고 동물의 세계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제마다 무장하고 사이코패스 기질을 드러낸다.

우리는 언제까지 탐욕의 독성에 오염된 승자독식의 물질문명에 복종할 것인가? 그리하여 우리 모두 인정사정없는 사이코패스로 변질되고 말 것인가? 진정 인간답게 살며 공멸을 피하려면 승자독식의 문명을 버리고 새로운 생존방식을 찾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인류문명의 진화방향은 적자생존(適者生存)에서 애자생존(愛者生存)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진화의 진정한 법칙은 경쟁보다 양보를 우선하고, 서로에게 이바지함으로써 번성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적자생존의 문명을 폐하고, 애자생존의 새로운 문명을 옹립하는 반란을 도모해야 할, 그때를 맞이하고 있다.

<이성록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