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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장을 보며

독일에서 장을 보며

by 운영자 2013.07.31

독일을 방문하던 중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바람도 쐴 겸 같이 길을 나섰지요.

대개의 경우 독일에는 주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법 큰 규모의 가게들이 있어 걸어서 쇼핑을 하는 것은 일상의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집을 나서기 전 꼭 열쇠부터 챙깁니다. 생각 없이 문을 닫으면 안에서 문이 잠겨 낭패를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실수를 대비하여 잘 아는 이들에게 자기 집 열쇠 하나를 맡겨두고 사는 경우도 있지요.

집 앞의 엘리베이터를 타니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연도가 눈에 띕니다. 1969년이었습니다.

그 연도라면 내가 열 살 무렵,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을 떠올리니 아득해집니다.

그 당시 큰 도시도 아닌 곳에, 큰 건물도 아닌 곳에 이미 엘리베이터가 동마다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오래 전에 설치되었다는 점도 그랬지만 40년이 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여간한 견고함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꽃과 나무가 줄지어 선 차도 옆 인도를 따라 가게로 갑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특별한 이야기처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행자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늘 경험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길을 걷다보면 어느 샌가 길이 막히기도 하고 끊기기도 하고, 그러면 차도로 내려서선 어렵게 자동차 눈치를 살피며 길을 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걸어서 길을 오가는 보행자의 권리가 안전하게 지켜지는 것이 평화롭고 여유 있는 거리가 되는 것임을 아쉬움으로 깨닫습니다.

길을 걷다보면 거리의 작은 부분에도 눈과 마음이 갑니다. 쇼핑을 한 물건을 담아오기 위해 작은 손수레를 끌고 나섰는데, 얼마든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갈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곳에는 턱을 낮춰놓았습니다.

작고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음을 즐거움으로 확인합니다.

건널목을 건널 때엔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더욱 구체적으로 느껴집니다.

달려오던 차들이 건널목을 건너려는 사람을 보면 어김없이 차를 세웁니다.

누가 길을 건너려는 모습만 보아도 차는 거의 자동적으로 멈춰섭니다.

보행자로서 괜히 눈치를 볼 것도 없고, 걱정이 되어 손을 들 필요도 없습니다.

보행자를 위해 차를 멈추는 일은 너무도 당연해서 차를 세우고 지나가기를 기다려준 운전자에게 따로 고맙다고 인사를 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가게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에서 가지고 온 빈 페트병과 깡통을 입구에 있는 기계에 집어넣는 일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병과 캔 등을 집어넣으면 기계가 자동적으로 하나 하나 인식을 하며 병을 받아들입니다.

병을 다 집어넣은 뒤 버튼을 누르면 내가 넣은 병의 값이 인쇄가 되어 나오게 되는데, 물건을 다 산 뒤 계산을 할 때 그것을 건네면 그것은 현금과 같아서 그만큼의 값이 계산에서 빠지게 됩니다.

자원이 순환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지요.

장을 보기 위해 산책하듯 다녀오는 길은 여유 있고 평화로운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거리에서도 같은 평화로움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욕심처럼 듭니다.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