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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여름방학이여 안녕!

뜨거웠던 여름방학이여 안녕!

by 운영자 2013.08.27

아이들 어릴 때는 ‘애들 방학이 곧 엄마 개학’이었지만, 드디어 둘 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기분만은 이 엄마도 아이들을 따라 긴 방학에 들어간 듯 했습니다.

학기 중이건 방학이건 20대 청춘들 얼굴 보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지만, 지난 7월 중순 어렵게 일정을 맞춰 네 식구가 남편의 근무지인 제주에서 4박5일 지낸 것이 올 여름 가장 큰 가족행사였습니다.

다른 일에는 티격태격, 아웅다웅하기 일쑤면서 이번 여름방학에는 공부나 아르바이트보다는 자유롭게 놀아보겠다는 결심에는 어찌 그리 의기투합이 잘 되는지 두 딸 모두 정신없이 돌아칩니다.

서울시에서 올해 처음으로 마련한 한강캠핑장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친구 저 친구와 돌아가며 팀을 이뤄 캠핑장을 출입했습니다.

정해진 용돈을 쪼개 쓰려니 머리가 아픈 것 같았고 때로는 친구들과 뜻이 맞지 않아 마음 고생도 심심찮게 하는 듯 했습니다.

이런 딸들을 지켜보며 혼자 집을 지켜야 했던 저는 그동안 미뤄뒀던 소설책 몰아 읽기를 스스로 여름방학 과제로 삼아 거의 하루 종일 책 속에서 살았습니다.

돋보기를 쓰고 읽느라 눈이 금세 침침해지고 머리며 어깨가 아팠지만 정말 원 없이 읽었습니다. 저의 이번 여름방학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선풍기와 소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8월말이 되었고 아이들이 수강신청을 한다, 등록금 고지서를 출력한다, 하면서 여름방학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립니다. 저도 노인복지관 수업 개강 준비를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등록금 마련을 위해 여름 내내 땀 흘려 일한 친구들한테 미안할 정도로 신나는 청춘을 구가하느라 바빴고, 저 역시 힘든 노동보다는 책 읽기로 여름 한 철을 보냈지만 결코 헛되이 보낸 시간은 아니었다고 슬쩍 변명해 봅니다.

부모의 간섭이나 잔소리 없이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일정과 예산을 짜고 준비물을 챙기면서 아이들이 어찌 배운 것이 없겠습니까.

저 역시 선풍기 바람 속에 책을 읽으며 신선놀음을 했지만 이 또한 제 안에 소리 없이 쌓여 조금은 풍성한 가을 열매를 맺는 데 양식이 되지 않을까요.

여전히 덥고 힘들지만 그래도 밤이 되면 살짝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옵니다.

쉽게 자취를 감추지는 않겠지만 여름도 물러갈 준비를 시작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정말 열심히 놀았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고, 이제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합니다.

새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며 공부하겠다고 결심하는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아이들과 엄마의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여름방학이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교차로신문사/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