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손으로 쓴 편지

손으로 쓴 편지

by 운영자 2013.08.28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모임이 있습니다. 미리 정한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모임이지요.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이란 뜻을 가진 ‘도래샘’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흔히 쓰지 않는 우리말을 적절하게 찾아 쓴다는 것이 정겹고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둥그렇게 둘러앉아 책에 대해서, 책을 읽은 뒤의 소감에 대해서, 결국은 우리네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 샌가 시간이 후딱 지나갑니다.

때로는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때로는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지난달에 정한 책은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이었습니다. 날도 여간 무더운 것이 아니어서 조금은 가볍게 읽을 책을 골라 정했지요.

화가 김병종 이성자 이우환, 소설가 박범신 이광수 김동인 조정래 박완서, 시인 박두진 김광균 고정희 노천명 서정주 김남조 신석정 이해인 등 책 속에는 낯익은 많은 예술가들의 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이들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대하는 것은 마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감흥으로 다가왔습니다.

빛바랜 원고지에 세로로 쓴 편지는 그 편지지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소중하게 보관되어 온 것인지를 충분히 느끼게 했습니다.

‘책을 펴내며’에 담긴 ‘문인들이 육필로 쓴 글에는 작가의 몸 내음이 스며 있다’, ‘편지는 1인칭으로 쓰인 작가의 육성이고, 내면의 소리의 직역본이다.

거기에서는 작가의 내밀한 세계가 분장 없이 노출된다.

편지는 개인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의 풍경을 보여주는 내시경이다’라는 말에 공감을 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밑줄을 긋게 하는 대목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떻게 당신과 내가 함께 있지 않고도 불행하지 않았던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친절은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매만도 못하다는 것을 당신은 알 게요.’

‘나이가 들면 청각이 약해져서 남들이 하는 소리를 잘 못 들을 때가 있지만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씀하셨지요.

꽃이 떨어질 때의 소리, 별이 질 때의 소리…. 저는 그 말씀에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책 읽은 소감을 나눈 뒤 편지에 얽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밥을 혼자 먹어야 하는 아들을 위해 매일 밥상 위에 편지를 써서 놓았다는 이도 있었고, 군에 입대하기 전날 지금의 남편이 자신에게 전한 편지를 읽으며 또 다시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습니다.

다음번 모임엔 내가 받은 편지 중의 하나라도 좋고, 누군가에게 쓴 편지도 좋고 편지 하나씩을 가지고 와 읽기로 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것을 자판을 두드려 대신하는 이 시대, 손으로 편지를 쓴다는 것은 드물게 내 마음의 진심을 나누는 일 아닐까 싶습니다.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