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끈과 운명

노끈과 운명

by 운영자 2013.10.29

<엄란숙>
시인, 순천문인협회


기 드 모파상은 프랑스 작가다. 그는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돋보이는 수작을 많이 남겼다.

모파상은 평범한 일상생활을 다루되 다른 작가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을 찾아내어 인간의 약점을 얄미울 만큼 날카롭게 꼬집는다.

어느 작가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극히 평범한 사건 속에서 인간의 심리적 갈등과 사회 풍자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특히 모파상은 필연보다는 우연한 사건에 무게를 싣는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도 좀처럼 인간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유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내적 또는 외적 요인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바람에 나부끼는 지푸라기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파상은 인간의 모든 행동이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의도하지 않은 어떤 우연한 사건 때문에 그녀, 혹은 그의 삶이 엄청나게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한 노인이 있었다.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겠다 싶으면 줍는 것을 좋아했던 노인은 장에 가던 길에서 반짝이는 노끈 하나를 발견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멀리서 한 사람이 그것을 본다. 장이 파하고 노인이 식당에서 일행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헌병대장이 와서 노인을 읍장에게 데려간다.

노인에게 읍장은 오늘 지갑을 잃어버린 이가 있는데, 노인이 길에서 지갑을 줍는 것을 본 사람이 있으니 조용히 내놓으라고 말한다.

노인은 깜짝 놀라 자신이 길에서 주은 것은 노끈이라며 주머니에서 꺼내어 보여준다. 그러나 읍장은 믿지 못하는 눈치였고 노인은 읍장에게 증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증인은 바로 노인과 얼마 전에 다퉈서 사이가 몹시 좋지 않은 이였다. 증인 대질과 몸수색 끝에 노인은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지갑을 주은 사람이 나타난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거짓말로 남을 비난하는 것은 나쁜 짓이고 자신은 모함을 당했다고 스스로를 변호하였다.

그러나 이미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늙은 여우’처럼 교활하다고 수군대며 손가락질 할 뿐이었다.

한 해가 다가도록 그 상황은 계속되었고 노인은 분함과 수치스러움에 피가 마르는 것 같은 마음의 병을 얻어 점점 쇠약해지고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우리는 흔히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파상의 ‘노끈’에서는 아궁이에 불도 지피지 않았는데 온 마을에 희뿌연 연기가 퍼졌다.

한 사람과의 불화가 의심을 낳고 모함과 소문이 비수가 되어 노인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만약 증인이라는 사람이 노인과 둘도 없는 사이였다면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졌을까? 비록 내가 본 것이 확실하다 하여도, 그 행위에 어떤 그릇된 의도를 내포하여 해석한다면 그것은 적확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내 감정만으로 어떤 이에 대해 품게 되는 적의가 상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도 알 수 없는 많은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다.

우리가 그 말들의 진위를 모두 확인 할 수는 없겠지만 혹여 나의 말 한 마디가 날카롭게 다른 이의 등을 향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만 더 생각해보는 하루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