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죄인이니 처벌해 주십시오” 올가을 들어 가장 쌀쌀한 지난 18일, 울산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여인이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1인 시위를 벌리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피켓에는 ‘내 아이를 살해한 동거녀 ○○○를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 아이 아빠를 공범으로 처벌해 달라. 저도 죄인이니 처벌해 달라’는 육필로 쓴 내용이 적혀 있다. 울산에서 계모의 학대로 숨진 여덟살 여자아이의 친엄마다.

계모에게 맞아 숨진 여자아이는 갈비뼈 16개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상태였다니 인면수심의 잔혹성에 소름이 돋는다.

2009년부터 지속적으로 학대와 폭행을 당해온 그 아이를 ‘생지옥’에서 구할 수 있는 기회는 2년 전에 있었다고 한다.

유치원 교사가 폭행 흔적을 발견해 신고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행위자가 거부하면 접근할 수 있는 법적 조항’이 없다며 계모에게 아이를 되돌려 보냈다.

허술한 법망과 주변의 무관심이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아 안타까움은 더하다.

비난의 화살은 친엄마에게도 쏟아졌다. 이혼 했을망정 딸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아이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며 험한 말이 인터넷에 쏟아졌다.

하지만 전 남편은 ‘친권(親權)’을 내세워 아이에게 접근조차 못하게 했고 주민등록등본을 뗄 수 없으니 주소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친엄마의 전화 수신을 차단했고, 딸의 이름도 바꿔 버렸다.

계모는 ‘학대치사’ 혐의로 구속 수감상태지만 처벌수위는 잔혹성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한다. 초범이면 깎이고, 친부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 더 낮을 수도 있어 공분한 시민들이 엄벌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계모뿐만 아니다. 자녀들을 상습적으로 때린 친엄마가 아동학대예방의 날(19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 강서경찰서에 아동학대 혐의로 입건됐다.

온몸에 피멍 든 채 길가로 내쫓긴 7세 아이는 경찰에서 네 살, 한 살짜리 동생들도 맞았다고 한다. 엄마는 교육차원에서 신문지 등으로 때렸다고 진술했다지만 온 몸의 피멍은 어떻게 변명 할 것인지 분노가 치솟는다.

일곱 살 남자아이는 네 살짜리 동생과 함께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 상태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데 학대에 강한 ‘참 나쁜 엄마’다.

아동학대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인데, 아동학대자들은 성인을 폭행했을 때 절반 수준의 처벌을 받는다.

현행 법체계만으로는 아동학대를 줄이기에 역부족이다. 아동학대에 관한 독립된 법률이 없고 가해자의 상담과 교육에 대한 강제성이 없다.

신체학대 보다 마음의 상처를 받는 정서학대가 더 많은데 정서학대는 고소와 고발조차 어렵다.

아동학대 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1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쟁에 몰두하느라 거들떠 볼 겨를이 없다.

아동학대를 선진국에선 ‘영혼 살인’으로 규정해 무겁게 처벌하고 친권도 박탈한다는 걸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아동학대 외면은 ‘영혼 살인’ 방조와 마찬가지다.

<이규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