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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지 말고 받으세요

밟지 말고 받으세요

by 운영자 2013.11.27

겨울로 가는 길목이어서 그럴까요, 부는 바람을 따라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책상 옆 창문을 통해서 내다보이는 나무를 헤아려보니 종류가 꽤 여럿입니다.

큰 키로 마당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상수리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한 여름 내내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고, 가을엔 적잖은 도토리 열매를 떨어뜨려 몇 차례 쫀득한 묵을 맛보게 해준 고마운 나무입니다.

도토리가 떨어질 때 지붕에서 나는 둔탁한 소리들은 상수리나무가 준 또 하나 선물이었습니다.

키가 크지 않아도 공원의 경사면에 서 있는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빛깔 때문이지 싶습니다.

물을 섞지 않은 채 빨강색 물감을 그냥 칠한 듯 붉은 빛깔이 여간이 아닙니다. 나무 아래 서기만 해도 붉은 물이 들 것 같은 느낌입니다.

플라타너스 나무는 벌써 휑하니 비었습니다.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콘트라베이스 연주가 생각납니다.

덩치에 걸맞게 쓸쓸한 무게감이 묻어나 늦가을과 잘 어울리는, 콘트라베이스의 묵중하게 가라앉은 특유의 음색이 전해집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지만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중한 무게가 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감나무의 잎은 누구에게 혼난 사람처럼 잔뜩 풀이 죽어 시들고 쪼그라진 모습으로 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나뭇잎들을 주워 가만히 바라보면 지문처럼 무늬가 보입니다.

햇살에 비치는 감나무 이파리의 무늬는 현미경으로 잎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갛기가 투명함에 이릅니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진 이파리라 하여도 빛깔이나 모양 등을 보면 같은 이파리를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면 곱게 물든 채 땅에 떨어져 내린 이파리들은 모두 하늘이 보낸 엽서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할 시간 많지 않으니 사랑하며 살라고, 언제고 돌아서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되라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이 참으로 아름다운 거라고,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디 밟지만 마시고 받아보시기를, 하늘이 보낸 하늘 엽서를 말이지요.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