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군과 이등병 아들

장군과 이등병 아들

by 운영자 2013.11.29

‘전장의 불사조’ 하늘로 날아오르다.

수많은 사선(死線)을 넘었던 ‘불사조’ ‘베트남전쟁의 한국 영웅’이 마지막 사선은 끝내 넘지 못했다. 초대 주월 한국군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예비역 중장이 지난 25일 타계했다는 부음 기사다.

향년 87세. “아직 살아계셨었구나” 혼자 되뇌었다. 군 복무 시절 1.21무장공비침투사태로 졸병 생활이 고달팠다. ‘월남전’이라 불렀던 전쟁은 막바지로 치달았고 채명신 장군은 전설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가 창안한 ‘중대전술 기지전략’은 정훈시간에 들었다. 베트콩을 원거리에서 사격하지 않고 근접하도록 유인한 뒤 공격하는 게릴라 전법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는 전술이다.

미군들은 채 장군을 ‘특수전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전략가’라며 ‘군신(軍神)’이라 칭송했고 세계 전사에도 기록됐다. 1965년부터 4년 8개월간 전장을 지휘한 뒤 2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 무렵 채 장군의 아들이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우리부대에 전입됐다. 아버지가 현역장군이란 티를 전혀 내지 않았으나 소문은 소리 없는 연기처럼 부대 안에 퍼졌다.

‘채 이병’은 사진으로 본 채 장군과 비슷한 얼굴에 덩치는 크고 말이 없었다. 내무반 청소는 물론 궂은일을 솔선하여 고참병들의 눈 밖에 나지 않았다.

어느 날 외출을 함께 나갈 기회가 있어 다방에 들렀다. 커다란 수족관 곁에 자리를 잡고 금붕어만 무심하게 바라보더니 “이 병장님, 붕어의 유영(遊泳)이 참 평화롭지요” 뜬금없이 말한다.

“내무생활이 비평화적이라 힘들어?” 건성으로 되물었다.

띄엄띄엄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에 그늘이 서렸다. 강직한 장군의 아들로 부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하거나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아 살가운 부정(父情)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외동아들을 졸병으로 입대 시켰고 보직에 대한 특별한 당부가 없어 강직한 성품은 당시에도 높게 평가받았다. 채 이병도 60대 중반이 넘었을 텐데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다.

병역기피가 많다보니 군 면제자는 ‘신의 아들’, 단기사병은 ‘장군의 아들’, 현역은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한다. 돈 있고 빽 있으면 요리조리 빠져나가거나 편한 보직을 찾아 나서 빈축을 산다.

인사청문회 때면 어김없이 당사자는 물론 자식의 병역면제 의혹이 불거져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최근에는 일부 고위공직자 아들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입대한 젊은이들에게 염치없는 짓이다.

인기를 먹고 사는 프로선수들과 연예인들도 병역기피 도마에 올라 위화감을 준다.

더구나 북한의 연평도 폭격을 정당화 하는 듯한 발언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킨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는 연평도 포격으로 희생된 군장병과 민간인을 모욕하고 나라를 지키는 국군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망언이다.

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영역이지만 국가안보는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다. 신선한 병역의무가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몫이 돼서는 안 된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