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가장 깊은 방

가장 깊은 방

by 운영자 2013.12.11

오늘 이 시대를 특징짓는 말 가운데 하나는 ‘가벼움’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많은 것들이, 거의 모든 것들이 가벼워졌습니다. 진지함이나 진중함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아이들이 지나가며 서로에게 ‘툭 툭’ 하는 말 중에는 놀랄 만큼의 욕이 들어 있습니다.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는데, 쉼표를 찍듯이 침을 흔하게 내뱉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아 ‘아니면 말고’ 식의 말들이 뉴스의 전면을 차지할 때가 많습니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과 마음이 담기는 것임을 어른들이 보여주지 못한 셈이지요.

아이들의 가볍고 거친 말을 탓하기에 앞서 어른들이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 많다 여겨집니다.

어떤 외국인이 우리나라 지하철을 타고선 참 낯설게 여겨졌던 모습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휴대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 등 각자가 손에 뭔가를 들고 자기 세계에 푹 빠져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가하게 창밖 경치를 바라보거나 책을 읽는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려웠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보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찻집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때가 있습니다. 서로 마주앉은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각자의 휴대폰을 손에 들고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입니다.

마주앉은 이들을 보면 친구이지 싶은데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따로 따로 다른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쉬움을 지나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현대인의 비극을 사실(私室)을 잃어버린 데서 찾은 이가 있습니다. 개인의 방, 나 혼자만의 고유한 공간을 잃어버린 것이 우리가 겪는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뜻밖의 말이지만 공감을 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뎌 합니다. 낯설어 하며 불안해합니다. 잠깐의 짬이 나도 게임이나 문자 등에 빠지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심리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한 해가 기우는 시간이 되면 꺼내드는 책 중에 릴케의 <기도시집>이 있습니다. <기도시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나의 주여, 당신은 그 성자들을 아시나이까?/ 밀폐된 수도원의 골방마저도/ 웃음소리, 고함소리와 너무 가깝다고 여겨/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 몸을 숨긴 이들을.”

‘밀폐된 수도원의 골방마저도 웃음소리, 고함소리와 너무 가깝다고 여겨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 몸을 숨긴 이들’이라는 표현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의 골방을 잃어버린 채 쫓기듯 가벼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두고, 골방마저 웃음소리 고함소리와 너무 가깝다고 여겨 다시 길을 떠나듯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 몸을 숨긴 이들이 있다니 말이지요.

우리 삶의 가벼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나만의 방을 회복하는데 있지 않을까요? 오롯이 내 존재를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깊은 방은 바로 내 마음속에 있을 터이고요.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