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을 모르는 일본인
반성을 모르는 일본인
by 운영자 2013.12.24
장병호
·교육학박사
·순천문인협회 고문
·전남교육청 장학관
지난여름 학생들을 데리고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나가사키는 규슈 지역의 항구도시로서 일찍이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창구 노릇을 한 곳이었다.
1864년에 지은 천주당이 잘 보존되어 있었고, 당시 신부들이 살았던 주택지대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17세기 무렵 네덜란드 상관(商館)으로 지어진 부채꼴 모양의 데지마(出島)라는 곳도 구경하였다.
그러나 나가사키에서 가장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은 평화공원이었다.
평화공원은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역에 조성해놓았는데, 평화기념상을 비롯해서 평화의 샘, 희생자 위령탑 따위가 세워져 있었다.
평화기념상은 청동빛깔의 남자가 눈을 감은 채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옆으로 평평하게 뻗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눈을 감은 것은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뜻이고, 오른손은 원자폭탄의 두려움, 왼손은 평화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분수가 솟아나는 평화의 샘은 원폭 피해자들이 묵이 말라 애타게 물을 찾았던 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원폭 희생자 위령탑이 몇 개 눈에 띄었는데, 그 가운데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도 있는 것을 보면 원폭 피해자는 일본인만이 아니라 우리 동포도 상당수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밖에도 원폭 투하 중심지탑과 파괴된 성당의 기둥 조각,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상 따위가 눈길을 끌었다. 원폭사망자 명단을 봉안해놓은 대리석 조형물도 있었는데, 총인원이 15만 8754명으로 적혀 있었다.
평화공원 인근에 있는 원폭자료관에는 원폭으로 잿더미가 된 나가사키 시내의 사진과 사상자들의 참혹한 사진들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온전한 건물 하나 없이 시가지가 온통 쓰레기 더미로 변한 가운데 새까맣게 그을린 채 나뒹구는 시체들이 당시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현관에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종이다발이었다. 울긋불긋한 색깔이 무슨 주술적인 의미를 지닌 장식인가 했는데, 가까이 보니 종이학을 접어서 줄에 꿴 것이었다.
여기에는 당시 원폭 피해를 입은 한 소녀가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접다가 죽은 안타까운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을 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원폭의 엄청난 위력과 전쟁의 비극성이었다. 원자폭탄 하나가 이렇게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다니, 정말 지구상에 전쟁은 없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생들도 끔찍한 희생자의 사진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진저리를 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때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혹시 우리 학생들이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를 놓쳐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사실이다. 처음 태평양전쟁의 불씨를 당긴 것은 일본이다.
그들은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세례를 받은 것이다. 결국 그들의 피해는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평화공원 그 어디에도 자기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거나 미국을 선제공격했다는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았다. 자기네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는 감쪽같이 숨기고, 오로지 피해와 상처와 고통만을 확대하여 보여줄 뿐이었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이런 상황에서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폭탄을 투하한 미국에 대해서 적개심을 갖고, 피해를 당한 일본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기만이 어디 있는가.
원인은 덮어두고 결과만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죄과를 희석시키려는 속셈! 평화공원이라니, 과연 그들이 평화를 들먹일 자격이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얄팍한 잔꾀로 진실을 호도하려는 일본인의 진면목이 아닌가!
지금도 일본은 독도와 다오위다오(釣魚島)를 두고 끊임없이 우리나라와 중국을 집적거리고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채 뻔뻔스러운 망언만 일삼고 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처럼, 불의 심판을 받은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과거 군국주의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을 어찌 동정할 수가 있는가.
진정한 참회와 사죄가 없는 한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한국사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학박사
·순천문인협회 고문
·전남교육청 장학관
지난여름 학생들을 데리고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나가사키는 규슈 지역의 항구도시로서 일찍이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창구 노릇을 한 곳이었다.
1864년에 지은 천주당이 잘 보존되어 있었고, 당시 신부들이 살았던 주택지대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17세기 무렵 네덜란드 상관(商館)으로 지어진 부채꼴 모양의 데지마(出島)라는 곳도 구경하였다.
그러나 나가사키에서 가장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은 평화공원이었다.
평화공원은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역에 조성해놓았는데, 평화기념상을 비롯해서 평화의 샘, 희생자 위령탑 따위가 세워져 있었다.
평화기념상은 청동빛깔의 남자가 눈을 감은 채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옆으로 평평하게 뻗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눈을 감은 것은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뜻이고, 오른손은 원자폭탄의 두려움, 왼손은 평화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분수가 솟아나는 평화의 샘은 원폭 피해자들이 묵이 말라 애타게 물을 찾았던 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원폭 희생자 위령탑이 몇 개 눈에 띄었는데, 그 가운데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도 있는 것을 보면 원폭 피해자는 일본인만이 아니라 우리 동포도 상당수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밖에도 원폭 투하 중심지탑과 파괴된 성당의 기둥 조각,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상 따위가 눈길을 끌었다. 원폭사망자 명단을 봉안해놓은 대리석 조형물도 있었는데, 총인원이 15만 8754명으로 적혀 있었다.
평화공원 인근에 있는 원폭자료관에는 원폭으로 잿더미가 된 나가사키 시내의 사진과 사상자들의 참혹한 사진들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온전한 건물 하나 없이 시가지가 온통 쓰레기 더미로 변한 가운데 새까맣게 그을린 채 나뒹구는 시체들이 당시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현관에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종이다발이었다. 울긋불긋한 색깔이 무슨 주술적인 의미를 지닌 장식인가 했는데, 가까이 보니 종이학을 접어서 줄에 꿴 것이었다.
여기에는 당시 원폭 피해를 입은 한 소녀가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접다가 죽은 안타까운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을 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원폭의 엄청난 위력과 전쟁의 비극성이었다. 원자폭탄 하나가 이렇게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다니, 정말 지구상에 전쟁은 없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생들도 끔찍한 희생자의 사진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진저리를 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때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혹시 우리 학생들이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를 놓쳐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사실이다. 처음 태평양전쟁의 불씨를 당긴 것은 일본이다.
그들은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세례를 받은 것이다. 결국 그들의 피해는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평화공원 그 어디에도 자기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거나 미국을 선제공격했다는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았다. 자기네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는 감쪽같이 숨기고, 오로지 피해와 상처와 고통만을 확대하여 보여줄 뿐이었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이런 상황에서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폭탄을 투하한 미국에 대해서 적개심을 갖고, 피해를 당한 일본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기만이 어디 있는가.
원인은 덮어두고 결과만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죄과를 희석시키려는 속셈! 평화공원이라니, 과연 그들이 평화를 들먹일 자격이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얄팍한 잔꾀로 진실을 호도하려는 일본인의 진면목이 아닌가!
지금도 일본은 독도와 다오위다오(釣魚島)를 두고 끊임없이 우리나라와 중국을 집적거리고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채 뻔뻔스러운 망언만 일삼고 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처럼, 불의 심판을 받은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과거 군국주의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그들을 어찌 동정할 수가 있는가.
진정한 참회와 사죄가 없는 한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한국사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