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의 ‘하얀 침묵’
자작나무 숲의 ‘하얀 침묵’
by 운영자 2013.12.27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니 문풍지 틈으로 파고들던 송곳바람처럼 시리다.
시린 가슴을 명징하게 치유할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침묵의 겨울 산이 아닌가 싶다.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찾았다.
강원도 인제 원대봉 자락에 자리 잡은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인제는 새 길이 뚫려 더블 백을 멘 이등병이 ‘인제가면 언제 오냐’며 한숨짓던 옛 시절 먼 길이 아니다. 세 시간 정도 걸려 원대리산림초소에 도착했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숲길로 접어든다. 3.5㎞ 임도를 쉬엄쉬엄 걷는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걷는 게 녹록치 않다. ‘숲의 여왕’을 알현하기가 쉬울 리 없다.
지난해 겨울, 경유지로 잠시 머물던 핀란드 헬싱키공항의 일렬횡대로 빼곡하게 도열한 자작나무 숲이 떠오른다. 닥터 지바고와 라라가 재회하여 애절한 사랑을 나누었던 작은 마을 외딴집 둘레 자작나무 숲이 설렘으로 어른거린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부드럽다.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산등성이 눈은 옥양목을 펼쳐 놓은 듯 새하얗다 못해 파르스름하다.
산허리를 끼고 천천히 오르는 길 옆으로 자작나무 숲이 펼쳐진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인공 수림이다. 전쟁과 화전으로 벌거숭이가 된 산에 1974년부터 산림청이 아카시아와 오리나무 대신 조경가치가 높은 자작나무를 심었다.
성장이 더딘 대다가 알락하늘소 같은 해충에 약해 더는 심지 않았다. 1990년 대 초 벌레 먹은 나무를 뽑아내고 69만 여 그루를 새로 심은 게 숲을 이뤘다.
세 개로 나뉜 숲 속 탐방로는 자작나무코스(0.9㎞), 치유코스(1.5㎞), 탐험코스(1.1㎞)로 이름을 붙어 놓았으나 별 의미가 없다. 각 코스는 서로 겹치면서 이어져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숲을 벗어나면 그만이다.
하얀 세상에 하얀 피부를 드러낸 자작나무 숲에 들어선다. 자작나무 표피에 부서지는 햇살이 더욱 눈부시다. 지순한 순백의 겨울 정령 앞에 강렬한 에너지를 느낀다. 얼룩진 영혼이 하얗게 표백된다.
시린 가슴이 스르르 녹으며 포근해진다. 세상 시름과 삶의 고단함이 순치되어 순백의 위안을 받는다.
눈 덮인 자작나무 숲에 하얀 침묵이 흐른다. 은빛 세상의 적요가 고즈넉하다.
말이 말을 만드는 말 많은 세상, 날선 말의 비수가 우리들의 가슴을 얼마나 저리게 했던가. 한 때 우리는 침묵을 강요당했고, 침묵 속에 분노를 곰삭이며 시대의 아픔을 활자의 행간에 담았다.
세상이 변해 자유가 홍수처럼 넘치는데도 진실을 호도한 불순한 구호가 거리를 휩쓴다. 말의 신뢰와 무게는 깃털보다 가볍다.
우리시대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씁쓸하다. 은세계에 뿌리내린 자작나무 숲은 모든 경계를 무너뜨린다.
‘자작~ 자작~’ 소리를 내며 타는 자작나무에 허욕을 불사른다. 겨울하늘을 이고 꼿꼿하게 칼바람을 이겨내는 자작나무 숲에서 하얀 침묵의 미덕을 배운다.
시린 가슴을 명징하게 치유할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침묵의 겨울 산이 아닌가 싶다.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찾았다.
강원도 인제 원대봉 자락에 자리 잡은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인제는 새 길이 뚫려 더블 백을 멘 이등병이 ‘인제가면 언제 오냐’며 한숨짓던 옛 시절 먼 길이 아니다. 세 시간 정도 걸려 원대리산림초소에 도착했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숲길로 접어든다. 3.5㎞ 임도를 쉬엄쉬엄 걷는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걷는 게 녹록치 않다. ‘숲의 여왕’을 알현하기가 쉬울 리 없다.
지난해 겨울, 경유지로 잠시 머물던 핀란드 헬싱키공항의 일렬횡대로 빼곡하게 도열한 자작나무 숲이 떠오른다. 닥터 지바고와 라라가 재회하여 애절한 사랑을 나누었던 작은 마을 외딴집 둘레 자작나무 숲이 설렘으로 어른거린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부드럽다.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산등성이 눈은 옥양목을 펼쳐 놓은 듯 새하얗다 못해 파르스름하다.
산허리를 끼고 천천히 오르는 길 옆으로 자작나무 숲이 펼쳐진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인공 수림이다. 전쟁과 화전으로 벌거숭이가 된 산에 1974년부터 산림청이 아카시아와 오리나무 대신 조경가치가 높은 자작나무를 심었다.
성장이 더딘 대다가 알락하늘소 같은 해충에 약해 더는 심지 않았다. 1990년 대 초 벌레 먹은 나무를 뽑아내고 69만 여 그루를 새로 심은 게 숲을 이뤘다.
세 개로 나뉜 숲 속 탐방로는 자작나무코스(0.9㎞), 치유코스(1.5㎞), 탐험코스(1.1㎞)로 이름을 붙어 놓았으나 별 의미가 없다. 각 코스는 서로 겹치면서 이어져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숲을 벗어나면 그만이다.
하얀 세상에 하얀 피부를 드러낸 자작나무 숲에 들어선다. 자작나무 표피에 부서지는 햇살이 더욱 눈부시다. 지순한 순백의 겨울 정령 앞에 강렬한 에너지를 느낀다. 얼룩진 영혼이 하얗게 표백된다.
시린 가슴이 스르르 녹으며 포근해진다. 세상 시름과 삶의 고단함이 순치되어 순백의 위안을 받는다.
눈 덮인 자작나무 숲에 하얀 침묵이 흐른다. 은빛 세상의 적요가 고즈넉하다.
말이 말을 만드는 말 많은 세상, 날선 말의 비수가 우리들의 가슴을 얼마나 저리게 했던가. 한 때 우리는 침묵을 강요당했고, 침묵 속에 분노를 곰삭이며 시대의 아픔을 활자의 행간에 담았다.
세상이 변해 자유가 홍수처럼 넘치는데도 진실을 호도한 불순한 구호가 거리를 휩쓴다. 말의 신뢰와 무게는 깃털보다 가볍다.
우리시대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씁쓸하다. 은세계에 뿌리내린 자작나무 숲은 모든 경계를 무너뜨린다.
‘자작~ 자작~’ 소리를 내며 타는 자작나무에 허욕을 불사른다. 겨울하늘을 이고 꼿꼿하게 칼바람을 이겨내는 자작나무 숲에서 하얀 침묵의 미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