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는 새해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새해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by 운영자 2014.01.02

나는 새해 새 아침부터 막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행복해지지 않을 수 없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게 됐다. 새해엔 퇴직한 내게 멋진 직장이 하나 생기겠단다. 월급도 만만치 않다. 금상첨화인 것은 주 4일제 근무다.

나머지 금요일은 반드시 여행을 가야 하며 여행지 도착증명서를 떼어 제출하면 경비의 115%를 지원받게 되는 직장이다.

이러니 새해부터 내가 왜 행복하지 않겠는가. 여행을 간다면 아내와 공식적으로 떨어져 살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아내의 지루한 잔소리로부터 해방된다는 이 터질 듯한 행복감! 그것도 매주 누리게 되다니! 밥벌이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온 내가 얼마나 가련했으면 기업주는 내게 이런 호의를 베푸시는 걸까.

새해 새 아침부터 나는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직장을 얻지 못해 빌빌대던 아들도 직장을 얻게 된다. 집에서 출퇴근하기 어려울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직장을 얻게 됐단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어 달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하게 될 거란다.

나는 겉으로 그거 안 됐다 했지만, 속으론 굉장히 좋은 일이군 했다.

아파트 앞 부동산 가계 유리창이 종이쪽지로 도배될 거란다. ‘들썩거리는 아파트’, ‘하늘 모르고 치솟는 당신의 부동산’. 그런 오색찬란한 종이쪽지들이 나붙게 되리란다.

아파트가 하늘 모르게 뛰면 집을 팔아 서귀포에다 한 채, 보스턴에다 한 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한 채 사놓고, 인생을 여행처럼 살 테다. 두고 보라지. 이러니 내가 왜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9월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리란다. 그게 사람이 될지 나무가 될지, 꽃이 될지 예쁜 새가 될지 모르겠다. 사랑 뒤엔 상처가 따르게 마련이라 나는 별로 사랑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 조금만 생각을 바꾸어 먹으면 싫기만 한 것도 아니겠다.

사랑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게 있다. 서남간에 귀인이 있단다. 귀인은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게 무엇이든 목마른 내 목을 축여주게 되어있다.

광어회에 소주 한잔! 하면 척 내놓고, 해외여행! 하면 비행기 표와 체류비용을 척 내놓는다. 휴식이 필요해! 하면 호텔 키와 고급승용차를 척 내놓는다.

고창 남원 임실 보령, 춘장대 장산도 관매도 고군산열도, 곡성 순천 여수가 모두 서남간이다.

이쯤에 사는 나의 알 수 없는 귀인은 올 한 해 나만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아우야! 하면 달려와 가려운 내 등허리를 긁어주게 되어 있다.

이러니 내가 왜 행복하지 않겠는가.

나를 이토록 설레게 만드는 건 무언가. 지난해 말에 본 인터넷 무료운세다. 나의 올해 총운은 용이 물을 만난 격. 섣불리 입을 놀리지 않는다면 천은보화에 인생사는 재미를 톡톡히 맛보리라 한다.

1월에 황금직장, 3월에 여행수, 5월에 귀인, 7월에 재물, 9월에 사랑수가 있단다. 이러니 내가 왜 행복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 행복에 겨워 막 미칠 지경이다.

이 기분을 올 연말까지 잘 이끌고 갈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다.

올해엔 술 끊고, 담배 끊고, 집 사고, 승진하고, 자식 놈 전교 1등 시키고, 하는 식의 새해 계획은 안 세울 생각이다. 그냥 이 무료운세의 재미에 흠뻑 빠져살겠다.

<권영상작가>
- 2002년 한국동시문학회 상임이사
-좋은생각 월 1회 연재 중
-저서 국어시간에 읽는 동시 등